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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서울에 살고자 하는가?(feat.지방균형발전)-에드워드 글레이저 『도시의 승리』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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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도시경제학·지역균형발전·국토정책·도시계획 분야에서 활용되며, 수도권 집중 현상과 지방발전 정책, 도시 경쟁력 및 인적자본 집적효과를 분석하고 국가 공간전략을 설계하는 문제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도시 집적효과, 혁신 네트워크, 협력 기반 성장, 교통 접근성 향상, 지역 특화 발전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 원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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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성장시키려면 똑똑한 인재가 모여들어 그들끼리 협력가능하게 해줘야 한다"

— 에드워드 글레이저 『도시의 승리』, 도시의 성장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숨 막히는 출퇴근 지하철, 오염되어 탁한 공기, 교통체증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서울에 살고자 하는가?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의 승리』(2011년)에서 도시는 인간에게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시는 인류를 더 부유하고, 더 똑똑하게,
그리고 더 친환경적이고, 더 건강하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든
위대한 발명품 - 에드워드 글레이저-

도시라는 용광로는 금융가, 법률가, 작가, 출판업자, 예술가, 상인들을 한곳에 모은다.

유럽의 이성의 시대와 계몽의 시대는 한편으로 도시화의 시대였다. 세계적인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의 임계량 이상을 모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도시화와 함께 가는 경향이 있다. 인민에 의해 왕권이 전복되었던 프랑스 혁명도 파리의 인구 밀집도가 강해지던 분위기 속에서 터져 나온 것. 도시와 문해력이 성장하기 전에는 해방적이고 전복적인 사상이 생겨나기 어려웠다.

낙후되고 발전이 없는 지역에서는 자유나 민주주의가 자라나기 어렵다. 그러한 곳에서는 지배만 있을 뿐이다.

인간의 자유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혼자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인간이 협력을 통해서 나오는 힘은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진실이자 도시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이다.

한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신의 능력보다 더 높이 성장하고, 획기적인 것을 발견해 내고, 많은 부를 일궈낼 수 있는 성공의 열쇠는 많은 혁신을 받아낼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하는 것이다.

모든 성공한 혁신자들은 수많은 똑똑한 개인들의 어깨에 올라탔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여러 지류들의 방대한 유역에서 좋은 발상들을 걸러냈던 덕분이었다.

지방자치라든가 지역의 균형 발전의 핵심은 서울과 같은 모양새로 좋은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신도시를 개발하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이전시킨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적자원이 협력을 이루게 만드는 환경"을 심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하여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 그 지역 공동체 내에서 모든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데 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 교육의 도시, 정치의 도시, 금융의 도시, 우주항공의 도시, 최첨단 과학도시 등 특수 전문 지역이 발달된 것을 볼 때, 도시의 성공적 발달은 똑똑한 인재들이 서로 경쟁을 이루어 혁신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데 있었다.

한국도 그렇게 특색 있는 지역 발전을 하면 좋겠는데, 한국은 땅덩어리가 작아서 그런가 웬만하면 모든 혁신과 정보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서울로 가는 편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지역 발전이 어려운 것인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한국처럼 땅덩어리가 작은 국가의 경우에는 굳이 서울 수도권의 힘을 빼고 각 분야의 인재들을 여기저기로 쪼개놓는 비효율을 저지르면서까지 지방의 균형 발전에 집착하지 말고 오히려 서울에 대한 접근성을 더욱 용이하게 해주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발전을 꼭 서울처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 앞으로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 무엇보다 귀한 자산이 되기때문에 인구가 적고 발전이 낙후된 지역은 자연친화적으로 산천이 더욱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는 쪽으로 재원을 집중시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 서울에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완전히 다른 것들이 지방에 있어야 다른 것들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가게 된다.

차라리 교통수단을 첨단 기술로 발달시켜 서울에서 모든 지역 1시간 내 접근가능 이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직장과 학교는 서울에, 집은 원하는 지방에서 자연과 가족과 더불어’ 이런 세상이 가능해지면서 반드시 서울에 살아야 하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울을 해체시켜 다른 곳으로 서울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해도 서울에 누적된 보이지 않는 문명의 힘은 옮겨낼 수 없을 것이다. 서울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쌓아 올린 교류와 협력이라는 대한민국 문명의 힘이 압축적으로 녹아든 곳이기 때문이다.

왜 굳이 서울을 해체하려고 하는가?

서울 과밀화로 인한 제반 문제는 과학기술과 행정기술로 조정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국민들을 위해 머리쓰기 싫어서 도시를 옮겨 해결하자는 발상이 나오는 것이 아닌지

국민을 통제하길 좋아하는 권력자들이야 인구집중으로 인한 국민 잠재력의 증폭을 두려워하겠지만 국민의 자유와 잠재력의 확장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은 인구집중의 힘을 꺼려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원론적으로 따지면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국가가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싶다하면 서울에서 사는것이 무리없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줘야 하고, 사람들이 서울에서 더 이상 살기 싫다고 할 때 그때야 비로소 서울을 벗어나 생활할 수 있게 해줘야 맞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떤가? 능력 있는 인재가 서울에 살고 싶다는데 국가 정책 때문에 억지로 짐승 끌려가듯 지방으로 내려가고 그로 인한 비효율을 국민 개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이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상황이 정말 맞는 것인가?

지방 균형 발전이란 명목을 앞세워 부동산 투기꾼들이나 지역 유지들의 이익만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국민들의 삶의 질을 위한 것이 맞느냔 말이다.

by Shadow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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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조작에 낚이는 과정: 똑똑한 사람들이 집단 무지성에 빠지는 현상(다원적 무지를 깨부술 대응방법) - 솔로몬 애쉬 동조실험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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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사회심리학·정치선동·전체주의·집단행동 분석 분야에서 활용되며, 개인이 집단 압력과 강제에 의해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거짓된 신념에 동조하는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문제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다원적 무지, 동조효과, 강제적 순응, 침묵의 나선, 열린사회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통한 집단 무지성 해체 원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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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최고의 지식인도 한순간에 멍청이 만드는법. 집단 무지성으로 빠뜨릴 선동조작질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 혼자 있을때는 정답을 말하는데 집단속에 있으면 오답을 선택한다. -솔로몬 애쉬 '동조실험'-


허이쿠저게 틀렸다는 것은
일자무식인 나도 알겠다.
저렇게 똑똑하고 높으신 양반이
왜 저걸 모른대
?
눈알이 삐었구먼 쯧쯧

초딩도 비웃을만한 상식 이하의 잘못된 선동에 국민 전체가 휘둘리는 현상은 왜 발생되는가?

분별 있는 사람들이 오류투성이의 이데올로기에 뿌리내리는 다원적 무지(집단 무지성) 현상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사회 심리학자들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단순한 판단에서조차 집단 무지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았다.

사회심리학의 선구자 솔로몬 애쉬는 패트릭 해밀턴의 연극 『가스등』에 나오는 가스라이팅에 낚이게 되는 인간 심리의 딜레마를 증명해냈다.

애쉬는 6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피험자의 반응을 실험하였는데, 그들에게 길이가 다른 세 선분 중 표적 선분과 길이가 같은 것을 고르라고 요구했다. 쉬운 문제였다.

피험자 앞에 다른 참가자들은 줄줄이 틀린 답을 골랐다. 피험자의 눈에는 분명 C가 동일한 것으로 인지를 정확히 했지만 나머지 6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B를 골랐기 때문에 마지막 자신에게 정답을 말하라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자신의 눈을 거역하고 무리의 뜻을 좇았다.

이러한 무지성 동조현상은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와인 감식 실험에서, 피험자 혼자 있을 때 감별해 낼 때는 훌륭한 와인과 식초 섞인 가짜 와인을 정확하게 분별해냈지만, 감식안이 뛰어난 전문가들과 함께 감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넌지시 알려준 뒤 와인 맛을 분별해 내게 할 경우 그들 모두가 식초 섞인 와인이 훌륭하다고 감탄을 하니 피험자들 중 절반 이상은 자신의 미각을 거스르고 그들의 합의에 따랐다.

애쉬는 실험을 통해 “충분한 지적 능력과 판단 능력을 갖춘 젊은이들조차도 기꺼이 흰 것을 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우리의 교육방식과 우리의 행위를 이끄는 가치관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할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러한 동조 효과가 군중 전체의 광기로 전염되려면, 사적인 거짓말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다원적 무지는 아주 얄팍한 카드로 만든 집과 같다. 이솝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가 말해주듯이, 어린 소년 하나라도 침묵의 나선을 깨뜨리면 거짓 합의는 순식간에 파열된다.

진실과 실체가 공통 지식이 되는 순간, 다원적 무지는 그 즉시 무너지고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마이클 메이시는 ‘강제’라는 추가의 요소가 있어야만 다원적 무지가 진실과 실체를 말하는 자들에게 맞서서 강고하게 버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메이시는 거짓된 순응(동조효과)과 거짓된 강제가 서로 강화함으로써 악순환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 때문에 각자 개인으로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온 인구가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진실인 양 퍼뜨리고, 동조효과가 발현되도록 사람들을 눈치주고 구속되게 만든 뒤, 이데올로기를 믿지않는 이단자를 처벌한다는 강제의 속성이 더해지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그 이데올로기를 속으로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들켜버릴까 두려워 그 누구보다도 더 강한 맹신자인것처럼 이데올로기에 동참하지 않는자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처단한다.

마녀사냥이나 숙청이 한창일 때 사람들은 남보다 먼저 고발해야 한다는 악순환에 빠진다. 모두가 숨은 이단자를 고발하려고 혈안이 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고발할테니까. 소련의 스탈린이 이러한 심리를 악용하여 소련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을 자신의 지배하에 구속시켰다.

솔제니친은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모스크바에서 공산당 회의가 끝난 뒤, 마지막으로 다들 스탈린에게 경의를 표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히 박수를 쳤다. 3분이 지나고, 4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감히 먼저 박수를 멈추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11분이 지나 손바닥이 화끈거릴 무렵, 연단에 있던 어느 공장 관리자가 박수를 그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제서야 나머지 참석자들도 고마워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 관리자는 그날 밤 당장 체포되어,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10년 형을 살게 되었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사는 사람들은 속마음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을 철저히 통제하는 법을 익힌다.

과거 홍위병이었고 나중에 역사가로서 마오쩌둥 치하에서의 삶을 회고록으로 기록했던 장융은 이런 말을 했다.

마오의 모친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했다는 사실을 찬양한 포스터를 보고 마오의 부모가 현재 우리 계급의 적으로 규탄 받는 부유한 농민이었구나 하는 이단적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자마자 스스로 생각을 억누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일단 자리 잡은 다원적 무지, 집단 무지성이 유지되는 현상은 설명하기 쉽다. 강제자들이 지켜보는 집단에서 저 혼자 일탈하려는 동기를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거짓선동과 강제의 압박속에서 어떻게 집단 무지성을 막아낼 것인가?

애쉬를 비롯한 사회심리학자들의 시뮬레이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만약 사회속에서 진실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진정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고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과 상호작용한다면 그 집단은 엉뚱하고 잘못된 신념에 장악될 위험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소통이 되지 않은 채 한동네에 뭉쳐 있고 그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거짓선동과 더불어 강제로 압박을 주게 된다면, 그 주변의 사람들은 동조현상을 과대평가하게 되고, 그 바람에 그것을 지켜보는 이웃들은 자신이 추방당하고 제재당할 대상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마음에 서로는 서로에게 잘못된 신념을 강제하게 되며, 그것을 앞서서 사람들에게 퍼뜨리게 되었다.

(이것은 식민치하에 같은 민족인 매국노 앞잡이가 오히려 더 잔인해지고 가혹해지는 경우를 설명한다.)

그렇게 거짓된 순응(동조현상)과 강제의 연쇄반응이 악순환되면서, 온 집단에 잘못된 신념이 퍼져나가게 된다.

스탠리 밀그램이 실시했던 ‘권위에의 복종 실험’에서 나온 중요한 교훈은 피험자들이 주변의 사회적 환경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권위적 이데올로기와 다수의 의견이라고 하는 부분에 의심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일임에도 이데올로기의 가르침대로 다수의 의견이 정해놓은대로 의심없이 저질러버리고 상대를 잔인하게 해치는 악마가 될 수 있다.

이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에서 분석한 현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적 환경에 민감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홀로 고립되기 싫은 마음과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라는 눈치보기가 강해지면 자신의 신념따위는 어찌되든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짓된 선동과 강제의 악순환이 퍼져나가는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 의하면 고립에 대한 공포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전체주의 사회의 선동집단은 이러한 인간의 치명적 약점을 후벼파서 사람들을 자신의 권력도구의 손아귀에 쥐게 된다고 보았다.

온 나라가 유해한 이데올로기에 전염되는 현상을 확실하게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예방책은 있다.

바로 열린 사회이다.

사람과 생각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회, 누군가 다른 견해를 공표했다고 해서 처벌하지 않는 사회이다.

설령 그것이 점잖은 합의에 위배되거나 이단적 견해로 보이더라도 통용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잘못된 것은 차단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화와 소통 속에서 스스로 교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서로에 대한 관용과 인내가 필요하다.

거짓은 억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진실을 마음 편히 소신껏 말할수 있는 사회에서는 진실 한마디가 수많은 거짓을 한꺼번에 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압은 진실을 덮으려 하거나 거짓과 싸울 지식이 없는 경우에 나타나는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고 거짓을 무력하게 할 지식들이 있다면 거짓은 따로 차단하거나 억압하지 않아도 소통하는중에 교정되어 자연히 소멸되게 된다.

그러니 열린사회, 사람들이 무엇이든 차단되거나 억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가 아는 진실을 이야기할수 있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진실은 보편타당한 공명정대한 관점에서 모두의 정의가 되어줄수 있는것

데이비드 흄은 『도덕 원리에 관한 탐구』에서 우리 마음에는 아무리 조금이라도 박애심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이러한 마음이 아주 작은 마음, 너무나 약한 정서들일지라도 우리는 이 좋은 선한 마음이 우리의 결정과 방향성을 인도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만 선한 마음과 이타성이 단지 남들에게 내가 ‘착하고 이타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닌 것인지 경계할 필요는 있다.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급급한 사람이 바로 지적 허세로 인한 집단 무지성에 빠져들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그 어떤 허세도 없이 담백하게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느끼는대로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남들이 그건 틀렸다고 잘못된거라고 해도 남들의 협박과 비난과 비웃음에 주눅 들기보다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감각과 신념을 일단 신뢰해 볼 필요가 있다.

독단적으로 아집을 고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양심이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 비정상적인 이념들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데 지레 겁먹고 굴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거짓된 이데올로기는 그를 따르는 쪽수가 얼마나 되든지 입김을 후 불면 그냥 쓰러져버릴 나풀거리는 종이카드로 만든 종이성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거짓선동이든 동조효과든 강제협박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분명한 것은 집단무지성을 단박에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진실을 알리는 흔들림 없는 한 명의 목소리이다.

-스티븐 핑거 『우리본성의 선한천사』 8장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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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공권력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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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국가통치·법치주의·공권력 신뢰·제도 안정성 분야에서 활용되며, 공권력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정치적 선동이나 권력자의 사적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하는 문제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법의 예외 없는 적용, 권력자의 자기구속, 의혹의 투명한 해소, 제도의 굳건함을 통한 공권력 강화 원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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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받는 공권력이란 "

— 쉽게 흔들리지 않은 굳건함


강력한 공권력은 국가 내에서 개개인들의 폭력성과 침해의 범죄가 나타나지 않도록 방지한다.

공권력이 강력할수록 그 효과는 확실해지고 국민들은 안전해진다.

모든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강력한 공권력이 되는 핵심은 누구든 자신의 적도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측근과 그 자신마저도 공동체의 법을 어기는 순간 처벌의 응보주의가 적용되어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권력자 그 자신이나 권력자 측근 친인척이 불법적인 것에 연루되었을때 권력자 그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알아서 하겠거니 방치 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아주 작은 의심도 남아있지 않도록 모든 의혹을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느끼기에 가장 막강한 최고권력자도 국가의 법치하에 예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때 국가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사태는 그런 취지에서 최고권력자였던 박근혜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탄핵한 헌재의 결과를 존중한다는 법치 중시의 자세를 보여주었지만

박근혜 탄핵사건은 오히려 국가의 공권력이 선동세력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줘버린 꼴이기 때문에 공권력에 대한 신뢰와 안정성이 동시에 무너져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법치 위에서 놀 수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준 꼴인데 누가 대한민국의 법치를 존중하겠나.

국가 권력자는 공권력의 신뢰감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마저도 법치에 따른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허울뿐인 것에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잘못된 것을 엄격히 분별해내고 굳건히 버텨내는 것도 중요한 것이라고 느낀다.

인간이란
자기를 지켜주지 않거나
잘못을 바로잡을 힘이 없는 자에게
충성을 바칠수는 없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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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진실화해위 문제점: 좌익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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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soning Type: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과거사 정리·전환기 정의·정치적 화해·국가배상 제도 분야에서 활용되며, 과거사 조사기구가 특정 가해 주체와 피해 집단만을 중심으로 진실을 구성할 때 발생하는 제도적 편향과 사회갈등을 분석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상호 피해의 균형 있는 조사, 도덕화 간극의 축소, 응보적 정의와 사회적 화해의 조정, 재발 방지 중심의 과거사 정리 원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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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호세력이 멸시를 받고 죄인이 되어야 하는 기괴한 현상, 무엇 때문?"

— 복수를 넘어


민주당(구 열린우리당)에 의해 추진되었던 과거사진상규명법은 과거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던 역사를 밝히고자 추진되었던 법안이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 통과됨에 따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되었다.

‘제주 4.3사건은 폭동이고, 광주 5.18은 민중반란’이라고 발언하였던 1기(2005-2010) 3대 위원회가 여러논란 끝에 해체된 후

2021년 2기(2020~) 초대 위원장인 정근식은 탈북 국군 포로들이 공산군 포로에게 저지른 가혹행위를 규명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2021년 11월에는 피해자들의 유족들에게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울 경우 국군 경찰로 기입하라"는 취지의 안내를 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실제 2021년부터 2022년 국군 경찰이 학살했다고 진실규명을 한 사건 중 최소 222건이 인민군과 좌익세력의 소행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이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위와 같은 일이 발생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의 과실에 의한 사건만 국가배상의 책임이 인정되고, 대한민국 과실이 아닌 빨치산이나 좌익 등 대한민국 적대세력, 북한에 의한 피해는 배상 소송조차 진행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유족들은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같은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을 가해자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분단된 채로 좌우 갈등이 여전히 한반도의 정치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만 책임을 져야하는 과거사 진상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 바쳐 헌신했던 분들을 폄하하고 상처주는 것밖에는 될 수 없고, 오히려 대한민국을 붕괴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보호받고 혜택을 받는 기괴한 결과를 낳게 하였다.

북한이나 좌파에 의한 피해자는 대상자가 되지 못하기때문에 그로인한 피해상황이 드러나지 않은것 뿐인데 마치 모든 악행은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만 저지른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발생한다.

스티븐 핑거의 『우리본성의 선한천사』에서 진정한 과거사 정리를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간에 화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각자 편향적인 입장에서 발생되는 도덕화 간극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한반도는 통일이 된 상태도 아니고 좌우이념갈등이 종지부를 찍은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도덕화 간극을 줄이지 못한 채 편향적으로만 과거사를 정리하게 된다면 그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상처만 깊어질 뿐 화해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사 진상 규명 위원회와 같은 매커니즘의 목표는 도덕화 간극을 부추기는 자기 위주의 편향을 없애기 위한 것이지 자기 쪽의 이익을 추구하고 상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편에만 이로운 내용들로 구성하는게 아니라 대립하고 적대하는 각자 자기입장의 편향을 없애는게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정치학자 윌리엄 롱과 피터 브렉케는 『전쟁과 화해: 충돌해소에서 이성과 감정』에서 “모든 성공적인 화해에서는 정의를 집행하되, 철저히 집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는 한탄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용서 가설이 예측하는 사회질서 회복의 조건과 부합된다. 모든 성공적인 화해에서는 응보적 정의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완벽하게 성취하지도 않았다.“라고 분석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를 추구하라”(화해할때 시비를 가리는것)는 말은 오히려 평화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정의란 각자의 입장대로 자기편향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념은 또 다른 불씨의 시작이 된다.

우선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고자 함인지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고자 함인지에 대한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진실과 화해는 공존할 수 없다. 진실을 밝히려면 아픈 역사의 시시비비를 확실하게 가려내야 하기에 제대로된 진흙탕 싸움을 또 한번 치열하게 해야 가능해지는 것이고, 진실을 밝히려는 싸움이 더해질수록 갈등의 골은 더욱 더 깊어져서 화해는 점점 아득해지게 될뿐이다.

그럼에도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한쪽만의 입장이 아닌 양쪽의 입장에서 각자가 알리고자 하는 모든 정보들과 과거 미국, 소련, 중국, 일본, UN, 남북한의 해제된 기밀문서들을 전부 추적해서 무엇을 시작으로 비극이 시작된 것인지 아주 치밀하고 매섭게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든지

그것이 아닌 갈등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평화를 원한다면 시비를 명백히 가려보고자 하는 분별심을 적당한 선에서 그치고 그야말로 평화를 추구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진실과 정의가 뚜렷하게 밝혀지기를 간절히 원하겠지만 진실과 정의란 그저 각자의 입장에 치우친 편파적인 것일 수 있고, 도덕화 간극 현상때문에 각자는 상대방의 주장을 부정한것으로 여기게 된다.

한쪽에서 진실을 뚜렷하게 밝히려 할수록 진실이 밝혀지기를 두려워하는 쪽은 진실을 은폐하려 할수도 있다.

좌익과 북한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을 소멸시키고 그들의 이념을 널리 퍼트리는것이 정의인 반면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것이 정의인 상황에서 희생자의 대다수는 뭐가 뭔지도 모른채 그저 명령 내리는대로 따르다가 희생된 사람들이다.

과거사 정리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상대편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희생되었느냐하는 서로의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두번다시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희생자 대다수는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만들고 고통받게해서라도 권력을 키워보겠다하던 탐욕스런 자들의 독단과 야욕으로 희생된 것이기 때문에 과거사 정리의 초점은 권력자가 함부로 사람들을 자신의 권력도구나 이념의 도구 쾌락의 도구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을 아는 것이다.

좌우이념과는 상관없이 가슴아픈 희생을 치른 피해자들이 그저 피해자가 아닌 진정한 국가유공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드리는 방법은 단순히 국가에서 자격을 드리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희생으로 두번다시 그런 아픔을 겪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리이다.

사람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고, 더 이상 허상뿐인 이념 따위로 국가와 민족이 편가르기가 되는 현상이 생겨나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시작은, 서로에게 상처준 역사를 끄집어 내는 것보다 서로의 입장은 달랐지만 각자가 한반도와 한민족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애썼던 역사를 나누는데 관심을 더 기울이는편이 나을것으로 보인다.

상대의 나쁜것을 밝히려하면 갈등이 심해지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커지면 역사를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충동이 앞서겠지만, 서로 노력했던 좋은점을 드러내는것은 거리낌없이 당당한것이기에 한민족을 위해 애썼던 긍정적인 부분들을 찾아가다보면 그속에 진실과 화해를 찾아나갈수 있는 좋은 가르침들을 발견할수 있을것이라 본다.

마이클 맥컬러프의 『복수의 심리학』(원제: 『복수를 넘어: 용서본능의 진화』)에서는 복수와 용서의 딜레마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다. 약육강식의 자연상태에서는 항상 이타적이기만 한 생명체는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에 적절한 복수도 생존에 필요한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협력하는 법을 아는 생명체가 복수를 잘 하는 생명체보다 더욱 오래살아남는다고 한다. 특히 용서는 서로의 이해가 혈연, 공통의 목표, 공통의 적으로 묶여있을때 용서가 너그럽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분열이 아닌 화해와 통합이라면 과거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지향점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그들의 공통의 적이 서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주어야 한다.

비극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식 해결책과 체홉의 해결책이 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결말에서는
무대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아마도 저 높은 어딘가에 정의가 아른거릴 것이다.
반면 체홉의 비극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환멸을 느끼고 씁쓸해지고 실망하고
철저히 망가진 상태로 끝나지만
여전히 모두가 살아있다.

-아모스 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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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심리학적 배경: 과잉 자존감 범죄의 위험성-바우마이스터&부시먼 연구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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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범죄심리학·사회심리학·인간관계 분야에서 활용되며, 스토킹 범죄, 나르시시즘, 과잉 자존감으로 인한 공격성과 대인폭력의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자격의식, 자기과잉, 역지사지, 자기객관화에 기반한 폭력 예방 원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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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니가 날 무시해? 적반하장 범죄, 스토킹 살해"

— 낮은 자존감 때문이 아니라 자존감 과잉이 폭력을 부른다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인데 내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바로 너 때문이다!

스토킹 살인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폭행 살인은 자칫보면 여성혐오 범죄처럼 보이지만 그 심리적 배경을 추적하면 과잉 자존감에 의한 우월의식에서 비롯된 나르시시즘 범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당역 살인범 행동 전문가 분석: https://n.news.naver.com/article/079/0003727498?sid=102)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 교수는 적반하장식의 살해는 자존감이 없는 열등감 때문이 아니라 자기 과잉으로 인한 과잉자존감 나르시시즘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Bushman, B. J., & Baumeister, R. F. (1998). Threatened egotism, narcissism, self-esteem, and direct and displaced aggression: Does self-love or self-hate lead to viol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재인용 http://m.dongascience.com/news.php?idx=12631)

로이 F. 바우마이스터는 자격의식이 지나친 남성의 경우 이성인 여성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신은 그것을 받아낼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성향을 띤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성향은 여성이 자신에게 성관계를 빚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과한 자격의식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여기므로 여성이 자신의 호의나 접근을 거절하거나 회피하기라도 하면 당연히 가져야 할 무엇을 빼앗긴 것처럼 엄청난 화를 내게 된다.

이러한 자기 과잉의 문제는 남녀간의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여성이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단순히 여성 혐오 때문에 그렇다기보다는 신체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독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기만의 감정에 빠져 객관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자기과잉적 나르시시스트들의 분노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감히 니깟게 날 무시해?

굳이 대상이 여자가 아니더라도 같은 동성간 동연배간 혹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기 기준에 볼때 자신보다 급이 낮다고 생각하거나 상대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해주지 않을때 “나를 감히?“라는 생각이 들게되고 그때 위와같은 나르시시스트 분노형 범죄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이와같은 경우는 사회적인 성취나 인내심과는 상관없이 과잉된 자아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것으로 자신에게 이러한 경향이 보인다면 스스로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그러나 자기자신을 객관화하여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아가 비대해져도 본인은 인식을 못하게 됨)

데니스 라이디 교수는 지나친 자격의식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든 상대에게 보복적이고 가학적인 행동을 취하게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나친 자격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당연히 가져야 할 무엇을 방해하는 이들을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행동 패턴이 드러나고 별일도 아닌것에 ‘비대한 자아’가 쓸데없이 과한 공격성을 북돋게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각종 혐오 범죄, 인종 차별, 백인 우월주의, 남성 우월주의와 같은 것들은 자기비하가 심한 자존감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은 당연히 남들보다 우월하고 따라서 더 나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과잉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브레드 부시먼 교수가 30여년에 걸친 공격성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출처: 박진영 심리학 칼럼리스트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5405 http://m.dongascience.com/news.php?idx=26879)

참고적으로 우리가 죄를 판단하거나 구형을 내릴때 가해자의 심적 상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자아가 과잉 비대해진 상태에서는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도덕화 간극이 심해지기 때문에 내가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원망하는 식의 반응이 나오게 되므로 자기과잉으로 인한 범죄는 ‘교화의 여지가 없이’ 피해자의 고통에 둔감하여, 참회가 없고, 죄질이 나쁜 범죄로 취급되어 중형을 받게 된다.

에리히 프롬,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자아비대 현상은 아무런 활동이나 소통없이 자기자신에만 과도하게 집중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로 나가 외부활동을 통해 자아를 여기저기 부딧치게 해서 과잉된 자아가 깨져야 나아진다고 보았다.

저사람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식의 나르시시즘형 범죄가 늘어난다는건 지금 대한민국이 사람들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줄어들고 홀로 고립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수 있다.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부정적 편향』에서 인간관계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자기 과잉이 생겨날 수 있는 ‘내 기준으로 생각하기’를 버리고, 내 기준으로 좋은 행동을 많이 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인지하고 그것을 삼가는 것이 관계개선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고 보았다.

연애할때나 썸탈때도 상대가 좋아할만한 행동 백가지를 하기보다는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 한가지를 하지 않는것이 호감을 키우는 방법이다.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의하면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상대가 뭘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인지를 하고 살기 위해서는 지나친 자기 과잉이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은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통해 스스로의 언행을 객관적인 제3자의 눈으로 경계하고 감독하는 습관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남 입장에서 헤아려보는것, 역지사지의 능력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잘못된 실수나 오해를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남을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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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의 근자감은 국가를 망하게 한다-바바라 터크먼 『독선과 아집의 역사』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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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과잉확신과 자기기만, 객관적 정보 단절로 발생하는 정책 실패와 조직 붕괴를 분석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독선, 자기기만, 과잉확신, 객관적 피드백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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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눈 먼 통치자들은 한 나라를 어떻게 망치는가"

— 근거없는 자신감이 가장 위험한 것




진취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근자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객관성을 잃은 자기중심적 마인드가 커지면 과도한 자기애 때문에 폭력성이 커지고 대인관계가 힘들어진다.

통치 권력자도 마찬가지다.

객관성을 잃고 자기확신에 빠져버리면 국가가 망하게 된다.

바바라 터크만의 『독선과 아집의 역사』의 원제는 『바보들의 행진: 트로이에서 베트남까지』이다.

권력에 눈먼 통치자들이 한 나라를 어떻게 망치는지, 다른 모든 과학은 진보하는데 왜 정치만은 옛날 그대로인지

통치자들을 독선과 아집으로 빠지게 만드는 오만함, 무지와 어리석음, 탐욕, 독선등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소개되어 있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통치자를 실패로 이끄는 아집과 독선이 자신을 과대평가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리처드 랭엄은 바바라 터크만과 로버트 트리버스의 ‘자기기만 이론’에 감화되어 군사적 무능은 데이터 부족이나 전술상의 실수가 아니라 과잉확신의 문제일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지도자들은 자신의 승전확률을 과대평가한다. 자기확신이 더 강할수록 결과는 더욱 처참하다.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이 그랬고, 히틀러의 소련 침공이 그러했다.

세상을 폭력으로 이끄는 것은 낮은 자존감이 아니라 지나친 자존감의 문제이다.

특히 근거없는 자존감이 문제이다.

정치에서 팬덤정치나 대중들의 인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대중적 인기가 객관적 환경을 왜곡시켜 객관적 정보가 소통될 루트를 막아버리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객관적 정보가 소통이 안되는 통치집단은 지금 현재의 지지도가 (실제로) 저조한데, 통계조작이나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의 순간적인 반응에 속아 자신이 상당히 인기가 있다고 착각하여 독단을 자행하다가 그나마 있던 지지율(대중선동을 위해 조작된 것이 아닌 진짜 실제의 민심)마저 사라지게 된다.

민심이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사라져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적대세력의 고의적 조작이나 여론 조작 때문이라며 현실부정하겠지만 실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지지율이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 인기영합적 정치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지만 견제와 균형의 제도가 살아있는 한 과잉확신의 문제로 역지사지의 감정이입이 결여된 지도자의 독단을 제어할 수 있다.

자신을 독단적으로 만드는 과대망상의 근자감을 현실적으로 바꾸어낼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 정보가 얼마나 솔직하게 소통되느냐이다.

조지 오웰은 “통치의 비결은 스스로의 무류성(결단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에 대한 믿음과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능력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통치의 정당성과 자신감을 가져다 줄 무류성은 객관적 정보의 소통으로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모조리 교정해 나갈때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무류성을 그저 자신의 오류를 숨기고 왜곡해 만들어진다고 착각하여 조작과 선동으로 통치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마냥 국민들을 눈속임하는 통치집단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도저히 숨길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그 실체가 드러나고 넘치는 오류 조작들 때문에 결국 무너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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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념 스펙트럼, 극좌와 극우는 정반대가 아니다

Pure Intuitive Insight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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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정치이념 분류체계 분석, 전체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 구도 설명,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구조적 유사성 연구 자료로 활용된다. 직선형 스펙트럼이 아닌 원형 스펙트럼 모델을 제시하는 데이터셋으로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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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와 극우는 정반대가 아니다. 그 둘은 쌍둥이처럼 비슷하다."

— 그들의 정반대 대척점에 자유주의가 존재한다.



보통 정치학에서 이념 스펙트럼을 논할 때

수직선 상에 극좌 공산주의, 중도 어디쯤 자유주의, 극우 나치즘 이렇게 배치한다.

그러나 이념 스펙트럼은 수직선이 아닌 원형 구조로 봐야 한다고 본다.
수직선 극단이 한점에서 만나 원형을 이룬 형태를 말한다.

spectrum

자유주의와 전체주의(공산주의, 나치즘)를 연구한 정치사상가들의 주장들을 통합해 보면

극좌 공산주의와 극우 나치즘/파시즘은 전체주의 독재라는 공통된 속성 때문에 그 둘은 정반대의 것이 아닌 한 점에서 만난다고 봐야 하고

자유주의는 그 중간 중도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대척점 정반대에 위치한다.

극좌 공산주의와 극우 나치즘은 국민들을 이념의 도구로 전락시켜 권력자의 권력 추구를 위해 악용하는 공통점이 있고,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몰살시키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비록 스탈린과 히틀러는 서로의 사상을 극혐하고 붕괴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했지만, 서로는 서로의 통치방식을 다른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며 서로에게 감탄했다.

또한 그 둘은 성향상 인간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측근 그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히틀러는 스탈린을, 스탈린은 히틀러를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했다고 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공산주의 소련을 폭압적인 일당주의 독재국가라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로 분류하였고, 그 외 일부 역사가들도 그들 두 이데올로기를 이란성 쌍둥이로 간주하였다. (출처: 스티븐 핑거 『우리본성의 선한천사』)

히틀러와 스탈린이 공통적으로 자유주의를 가장 극혐했다는 것도 공산주의 극좌세력에게도 나치즘 극우세력에게도 그들에게 자유주의가 가장 위협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세계의 정치사는 좌파 VS 우파의 대결이 아니라
전체주의 VS 자유주의의 대결로 봐야 한다.

이 구도를 진작에 통찰하고 공산주의와 나치의 현란하고 입발린 소리에 속지않았던 사람이 영국의 처칠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공산주의 속에 숨겨진 반자유주의적 전체주의성을 누구보다 빨리 간파한 인물이 바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다.(이승만의 『공산당의 당부당』참고)

극좌 공산주의의 반대는 극우가 아닌 자유주의이고,
극우 나치/파시즘의 반대는 극좌가 아닌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만이 전체주의적 극좌 극우 양극단을 소멸시키고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살아숨쉬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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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서 제거되는 표적:혐오스럽거나 은근히 두려움을 사거나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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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사회심리학·인간관계·집단행동 분야에서 활용되며, 집단 따돌림, 사회적 배제, 혐오와 위협 인식으로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비인간화, 혐오심, 위협 인식, 공동체 배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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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당하는 원인"

— 혐오스럽거나 두려움을 주거나




인간 공동체 속에서 위협이 되는 대상은 격리되거나 제거되거나 이탈된다.

그렇다면 어떤 특징이 공동체에 위협이 되는 존재인가?

단순하게 보면 혐오감을 주거나 위협감을 주는 존재가 공동체에서 이탈된다.

정치학자 대니얼 골드 헤이건은 『전쟁보다 나쁜』에서 집단살해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비인간화되거나 악마화되었다고 지적한다.

혐오 연구자들은 상대를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만들고자 할때 비인간적이고 더럽고 오염된 이미지를 상대에게 덧씌운다고 분석했다.

인간은 혐오스러운 대상에게 물리적 거부뿐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경멸까지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혐오스럽게 비인간화된 대상은 해충처럼 근절되거나 박멸된다. 그래야만 하도록 심리가 유도된다.

박멸의 대상은 혐오스러운 대상 뿐만 아니라 위협을 주는 대상도 마찬가지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세계의 전쟁사는 상대의 강성함에 위협을 느낄때 발생된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사회생활 학교생활 속에서 상대를 혐오대상이나 위협대상으로 만들고 남을 함부로 공격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사람들에게 혐오대상이나 위협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자신을 절제하고 잘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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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 대북원칙 '힘에 의한 평화'의 이론적 배경: 1000배로 때려준다가 효과적인 이유-토마스 셸링 『갈등의 전략』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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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Case (AI Application Context): 이 글은 국가안보·국제정치·억제전략 분야에서 활용되며, 북한 핵위협과 비대칭 안보환경에서 억제정책 및 보복전략을 분석하고 국가안보 의사결정을 검토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신뢰성 있는 억제력, 공포의 균형, 보복능력, 전략적 의사소통을 통한 갈등관리 원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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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성 있는 억제정책은 선제공격 의지를 제거하는것 -토마스 셸링 『갈등의 전략』"

— 강한 보복력을 갖출수록 북한 도발을 관리하기 쉬워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1월 11일 “북한이 우릴 공격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게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1639773?sid=100 )

이에 한겨레신문 권혁철 기자가 전시도 아닌 평시에 ‘100배 1000배의 보복’의 표현은 외교 안보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언어로 부적절하고 북한의 호전적인 언사를 따라한 것이라며 품위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23276?sid=100 )

그러나 의사소통이 상대에게 정확하게 꽂히려면 나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사소통방식으로 해줘야 잘 알아먹는다. 외교적인 능력과 소통의 배려심은 얼마나 상대방 방식으로 표현할수 있느냐에서 나온다고 본다.

갈등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의사소통이 정확하게 잘 되는 것이 첫째로 중요한 것이지, 북한이 사방으로 미사일을 쏘아대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품격을 따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생각 아닌가.

굳이 품격을 따진다고해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실제로 상대방을 바꿔낼수 있는것이 진정한 품격이지 빛좋은 개살구처럼 말뽄새만 점잖다고 품격이 세워지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북한은 워낙 예측불가능한 존재라 전시와 평시를 나누어 판단할수 없다고 본다. 전쟁이 어디 ‘나 이제 들어갑니다 완전무장하세용~‘하고 시작하는 것인가.

비대칭 상황에서의 1:1 비례적 대응, 억제효과 있을까?

물론 권혁철 기자 말대로 국제법이 용인하는 자위권 행사의 요건은 비례성이 핵심이다.

1개의 미사일을 쏘면, 1개의 미사일로 되갚아주는게 정당방위로 용인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핵이 없는 대한민국이 핵무장을 한 북한과 폭력외교를 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머리에 지고 있는 지정학적 상태에서 유엔사가 획일적으로 규정한 비례성을 적용시켜 한국의 안보를 효과적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

핵전력은 남한의 모든 군사전력을 투입한다고 해도 비례적이지 못한 압도적 전력이다.

이러한 불균형에서 오는 북한과의 비대칭 관계에서 100배, 1000배의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부족하면 부족했지 넘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유엔 헌장, 유엔 사령부의 정전 교전 규칙 등을 따져가며 비례성을 강조할거라면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확보하여 핵무장을 했을때나 가능한 소리다.

그럴때야 비로소 북한이 총탄 1발 쏘면 우리도 1발 쏘고, 대포 1발에는 우리도 대포 1발, 이런 비례적 대응이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불신을 해결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첫째 : 단, 합리적으로 정책 결정을 하는 상대일때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1961년)은 폭력의 동기에 대해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인간의 분쟁에는 세 가지 주된 원인이 있는데 첫째는 경쟁, 둘째는 불신, 셋째는 영광이다.

첫째는 이득을 노려 남을 해치게 되는 경우이고, 둘째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남을 공격해야 하는 경우이다. 셋째는 자신의 평판을 드높이기 위한 야망에 타인을 해친다.

위기관리의 고전이라 불리는 그레이엄 앨리슨의 『결정의 본질』에서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불신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일으켜 전쟁의 발화점이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핵 전쟁이 곧 터질 것 같은 급박한 위기상황에서 수뇌부끼리 긴밀히 대화할 수 있었던 소통 덕분이었다. 이때 나온 것이 ‘핫라인’이다.

그러나 북핵문제는 앨리슨의 합리적 의사결정 모형도 수뇌부끼리의 핫라인 소통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쓸데없이 힘을 과시하는 일을 하지 말고 끊임없이 선의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제적 규범과 상식을 준수하고 합리적 판단을 하는 상대에 한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앨리슨의 주장대로 힘을 과시하지 않고 끊임없는 선의를 보여준 김대중의 햇볕정책의 결과 북한에게 핵전력이라는 절대방어 무기를 쥐어주게 되어 갈수록 대응하기 골치아프게 되었을 뿐이다.

앨리슨의 논리가 북한에게 통하지 않았던 것은 북한은 개인의 이익을 배제한 채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적 보편적인 상식과 선의, 규범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통하지 않는다.

확실한 보복 수단을 가져야 억제 능력의 신뢰성이 확보된다

북한 문제는 오히려 토마스 셸링이 제시한 부분으로 풀어야 더 적합하다고 본다.

게임이론을 정립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토마스 셸링은 『갈등의 전략』에서 서로 확실한 보복 수단을 가지고 있을때에만 도발이 억지된다고 주장하였다.

셸링은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응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상대의 배반과 공격에 되갚아줄 수 있는 ‘보복을 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상대와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억제는 상대의 행동을 그만두게 하는 행위이다. 상대의 공격에 똑같이 비례적으로 행동할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 의지 자체를 꺾어버리는 것이 억제이다.

안보에서는 적이 나를 공격하면 내가 더욱 강하게 받아쳐서 적이 나를 공격하기가 주저하게 되는 것이 억제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더라도 김정은의 의도를 억제시킬 그 어떤 수단이라도 우리가 가지게 된다면 핵무기를 갖지 않더라도 북한의 도발을 억제시킬 수 있게 된다.

김정은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발을 억제시킬 방법이나 수단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핵전력을 갖춰서라도 도발의지를 억제시켜야 한다.

선제공격 의지 자체를 꺾어버리면 비례적 대응까지 오지도 않는다

투키디데스부터 홉스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제정치는 불신적인 국제환경에서 안보딜레마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해왔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제공격 하지 말것”

그러나 이 말의 뜻은 그냥 착하게 있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상대의 첫번째 선제공격을 받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국가간의 전쟁이 불안과 불신으로 도발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국제환경속에서 선제공격을 먼저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첫 공격을 견뎌낼 만큼 충분히 강해야 한다.

내가 먼저 선제공격을 하지 않은 채로 상대의 공격을 받고 그것을 견뎌내게 되면 그 차후의 공격의 정당성은 내가 가지게 되는데, 이때에는 선제공격한 공격자와 같은 방법으로 보복해야 한다. 앞서 권혁철 기자가 지적한 부분이 여기쯤에 위치한 내용이다.

그러나 권혁철 기자가 간과한 부분은 더욱 안전한 신뢰성 있는 억제정책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우리의 보복 반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애초에 선제공격을 할 동기를 느끼지 못하도록 그 의지를 차단하는데 안보의 더욱 중요한 핵심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제공격 자체를 할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게 만드는게 중요한 것이지 자꾸 도발해도 되는 만만한 존재가 되어 국가의 방위권이 매번 침해당해서 이미 쪽팔리는 상황인데 대통령의 표현력 품위 어쩌고가 뭔 쓸모가 있겠냐는 말이다.

억제정책은 셸링의 말대로 보복하겠다는 위협이 신뢰성이 있을때에만 유효하다. ‘저놈이 보복하겠다하면 진짜로 하는 놈이다’라는 인식이 상대방에게 확실히 박혀야 된다.

우리는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북한의 도발에 소극적이거나 무대응으로 반응해왔기 때문에 북한은 대한민국이 강력하게 보복하겠다는 것을 말뿐인 수사라고 여기고 있다.

오죽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1000배로 돌려주겠다’는 발언을 했을때 김정은은 윤석열이 객기부리는거라고 조롱하겠나

억제능력의 신뢰성은 공포의 균형을 이룰때 가능해진다. 힘으로 소통하려는자에게는 힘을 보여줘야

북한이 보기에 첫 도발에 무반응하거나 소극적 대처를 한다면 북한은 우리의 보복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또한 북한이 보기에 우리가 항상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서 매너와 품위를 지키면서 합리적 판단에 따라 비상식적 보복을 하지 않을 것 같다면 북한은 우리의 상식과 합리성을 악용하여 편~하게 오줌싸듯 수시로 도발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할때에만 그리고 그 모든 선제공격에 대해 즉각적인 복수로 앙갚음할 때에만 북한에 대한 억제능력에 신뢰성이 확보된다.

우리는 북한 핵무기와 동일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에 압도적인 양으로라도 반격할 의지가 있음을 강하게 피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유엔규정을 지켜야 할 문제도 품위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러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으로 인한 억제정책은 폭력으로 폭력을 줄이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과열되면 상대의 의도치 않은 작은 실수에도 과격한 보복으로 반응하게 되는 폭력의 연쇄작용을 멈추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윤석열정부에서 ‘힘의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동시에 북한 김정은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을 대통령실에 설치한 것이다. 이는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를 마련해둔 것이므로 ‘공포의 균형’의 효과를 얻어내면서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게 해줄 것이다.
(물론 북한이 핫라인을 끊어놓은 상태이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련해 놓고 있어야한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1/0002551147?sid=100)

북한 문제는 우리가 북한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말과 논리의 품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힘의 논리로라도 제압해야 하는 문제이다.

폭력적인 국가에게 통할 만한 방법은 ‘먼저 건들지 않으면 나는 아주 착하고 협조적이지만 털끝이라도 잘못 건들면 아주 조져버리겠다’는 보복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힘의 대결에는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상대의 공격욕구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불필요한 힘의 과시도 주의해야 하지만, 힘의 약세도 드러내어서는 안된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면, 아테나이의 부흥과 확장으로 강성함을 떨치며 자랑질하던 점이 스파르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자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교훈을 북한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그 힘을 과시하려는 비정상적인 도발을 계속하게 되면 과격한 보복 공격의 정당성은 오히려 대한민국이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교훈은 어느 한 국가의 압도적 우위는 반드시 주변국들의 불안을 자극해 전쟁을 발발시킨다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교훈이 하나 더 있다.

아테나이가 그들의 풍요로움과 강성함만을 믿고 자만과 안일함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오히려 힘의 열세에 있었던 스파르타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버린 측면이 있다.

우리가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우위라고 외교적 언사의 품위나 따지면서 자만하여 군사적 준비를 태만하게 할 경우 아테나이처럼 사소한 문제들 때문에 국가가 멸망하게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이 해야 할 군사적 준비는 단순히 무력적인 전력배치 뿐만이 아니라 적국이 느끼기에 도저히 비집고 파고들 약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한다. 동맹국들과의 협력과 단합, 국가내부에서 갈등이 자라나는 부분들을 빨리 잡아내서 그것을 해결하는 갈등관리능력,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이게 할 수 있는 통합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다양함을 어우러지게 만들 조화의 리더십 등 그 모든 것을 포괄한다 하겠다.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음을 명심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 너무 망설이지 맙시다.

죽음조차 불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란
더 나아질 가망이 전혀 없는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을 경우 운명이 역전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가장 잃을게 많은 사람입니다.

자긍심을 가진 사람이 희망을 품고 용감하게 싸우다 자신도 모르게 죽는것보다,
자신의 비겁함으로 말미암아 굴욕을 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페리클레스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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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위선과 사회의 악랄함을 납득시키는 풍자의 기법: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활용한다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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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치철학·사회비평·문화예술 분야에서 활용되며, 권력의 위선과 사회적 모순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풍자 기법과 비판적 사고를 분석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분석·의사결정에 사용되고, 소격효과, 제3자의 관점, 객관적 거리두기를 통한 사회비판의 원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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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풍자기법: 주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관망해야 사물이 정확하게 보인다."

— 베르톨트 브레이트 "소격효과"


풍자는 보통 권력자들의 위선이나 사회적 문제를 비평할 때 예리하면서도 안전하게 그 실체를 깨닫게 해주는 방법이다.

자칫 엄근진한 도덕주의자는 비웃음 당할 수 있고, 투쟁적인 논객은 입막음 당할 수도 있지만, 풍자가는 같은 요지를 은밀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정치적 노선이나 입장 차이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교훈을 주는 풍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거리두기다.

풍자를 하려는 대상에 감정이입이나 감정 동화를 일으키는 친밀한 입장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도록 해줘야 그 대상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이며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양 연극계의 주류였던 카타르시스 이론을 반박하여 관객이 배우의 연극에 몰입되지 않아야만 비판적인 자세로 예술을 바르게 감상할 수 있다는 “소격효과"를 제시하였다.

브레히트는 문화를 악용하여 사람들에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 상황에 맞서 관객들이 비판적이고 주관적인 인간 정신이 말살되지 않도록 하는 거리두기 기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는 정치논객들이나 풍자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권력자나 사회세태를 풍자적으로 비판할때 참고할만한 부분이다.

풍자가 진정 예리한 통찰로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는 소격효과(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거리두기)를 이용하는 것이 풍자 대상의 헛됨과 악랄함을 정확하게 드러내 주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청중에게 외부자의 관점(바보, 외국인, 여행자의 관점 등 전혀 관계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라고 유도해놓은 다음, 청중으로 하여금 사회의 위선과 인간본성의 결함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브레히트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소격효과는 사상적 근거를 찾으면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들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제3자의 방관자 입장’에 서 있을 때 모든 사물과 상황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효과를 연출시킨 것이 바로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라고 생각한다.

풍자는 대상을 조롱이나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잘못된 것의 결함을 간파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함에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편을 들기 위해 상대편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서 사람들간에 갈라치기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을 사람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그 모두를 자기 편향적 주관적 입장에서 벗어나서 객관적 시선에서 다시 돌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풍자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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