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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진실을 꿰뚫어보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싶다 (feat.책임회피하지 않는 사람)-안데르센 <벌거벗은 임금님>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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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꿰뚫는 능력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권위와 다수 여론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 판단력과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용기에서 형성되며, 의존적 동조 성향은 판단력 약화와 책임 회피 구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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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꿰뚫는 힘.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의존적이지 않은 독립성에서 비롯되는 능력"

— 안데르센, 『벌거벗은 임금님』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임금님이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나체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망신을 당한다는 이야기의 동화이다.

재단사는 “탐욕스런 사기꾼에게는 안보이는 옷감"이라고 못박아 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사기꾼으로 보이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모두들 옷이 안보이는데도 매우 훌륭한 옷이라고 칭찬했고, 임금님마저도 자신이 벌거벗은채로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이 사기꾼으로 불릴까봐 옷을 입고 있는 듯 흡족하게 포즈를 취했다.

임금님은 그 훌륭한 옷을 입은 듯 알몸인 채로 위엄을 갖추고 거리를 행차했으나 시민들은 그 옷이 자신의 눈에는 분명 보이지 않았지만 자기들도 사기꾼이 되기 싫어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어느 한 꼬마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며 소리치며 깔깔 웃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옷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안데르센, 『벌거벗은 임금님』


이 동화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풍자하기 위한 우화이지만 에리히 프롬은 『환상의 사슬너머』에서 이 이야기를 타인의 눈치만 보면서 초조해하는 의존적 성향의 인간들이 독립적인 관점을 가지지 못할 때 나타나게 되는 어리석음을 꼬집는 이야기로 해석했다.

에리히 프롬은 진실을 꿰뚫어보는 지능은 지식과 관계되어 있다기보다는 독립심이나 용기 또는 성장을 추구하는 생명력과 같은 성질에 더 큰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어 다수의 질타를 받을까봐 눈치만 본다든지, 틀에 박힌 진리나 사상적 권위, 명성, 관습 따위에 의지하여 그러한 것들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지능을 키우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력의 힘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진실을 꿰뚫고 새로운 길을 창조해 내는 천재적인 지능은 보편적 지적 권위, 대중여론의 다수의 의견, 언론, 권력자의 의견, 유명인의 명성 따위에 지배되지 않음에서 바탕이 되는 것이고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여러요소들 사이에서 관련성을 찾아내려는 도전정신 속에서 개발된다.

위대한 사상가나 과학자들은 모두 ‘상식’이나 인간의 ‘오감’이라는 현상계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의 진정한 참 모습을 알고자 하는 정열적인 욕망을 갖고 있었다.

나의 생각에 동조해 주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참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갈망으로 독립적으로 용감하게 지력을 발달시켜 나간다.

그러한 방식으로 지식을 탐구해 나가다 보면 인간의 눈이 열리고 의식이 각성하여 다른 누군가의 생각에 기대어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진실을 인식하는 일은 본래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인물의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이다.

즉 권력의 명령이나 대중의 다수여론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며 그것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을 중지하고 자기 자신만의 개성과 주관으로 세상을 독립적으로 바라본다.

흐름에 거슬러 독립적으로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문제에 대해 “그렇다"라고 용감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진실에 직면하여 회피하지않고 감당해내는 책임감 있는 특징을 갖췄다는 뜻이다.)

권력의 명령이나 대중의 여론에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려는 수용적인 사람들은 생각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생각을 해낼 줄을 모름으로 자기 혼자 내버려두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남의 도움 없이는 그 어떤 판단도 독립적으로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결단을 내리거나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에서처럼 본질적으로 혼자서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될 긴급한 경우에 그 무력감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방관적으로 다른 직원이나 다른 부서에게 일을 떠넘기려 하다가 일의 공백이 생겨나게 만들어 큰 재난을 불러들이게 된다.

남의 생각에 동조하려고만 하는 의존성을 버리고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두뇌활동을 해야 하는 필요성은 단순히 천재적인 지력을 갖추기 위함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급작스러운 일이 발생되어 오직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을때 내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신뢰감으로 과감하고 단호한 (하지만 바른) 판단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으려면 평상시에 독립적인 판단을 하며 살고 있어야 한다.

큰 사건이 터졌을때 다른 부서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정치나 행정을 처리하는 현상은 지금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의존적인 인간들만 넘쳐나고 있는 것인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르게 바뀌기를 바란다면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부터 바뀌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 자신을 개혁시키고, 자신의 자리에서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갖출 수만 있다면, 남탓만 하거나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책임회피하는 식으로 문제와 갈등만 키우는 현상은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덧붙임) 에리히 프롬의 지력 키우는 법을 참고해본다면 수험생들의 공부방식도 책이나 강사가 알려주는 대로 끌려가는 수용적인 공부방식보다는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주제를 잡고 그 주제와 목적에 맞게 지식을 끌고다니는 식으로 공부를 해나간다면 더욱 효율적이고 지능이 좋아지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공부할때도 보면 가만히 수용적으로 지식을 습득할때보다는 내가 책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기분으로 지식을 끌고 나가는 추진력이 두뇌에서 느껴질때 기억에도 잘 남고 공부하다가 졸리지도 않고 그랬던 같다.

수용적으로 인풋식 공부할때는 계속 꾸벅꾸벅 졸기만 하고 머리에 남는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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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이태원 할로윈 참사의 방관자 효과, 그것은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지 MZ세대의 개인주의 때문이 아니다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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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군중 속 개인은 책임 분산과 집단 동조 심리로 인해 독립적 판단 능력을 상실하며 방관자 효과가 발생하고, 이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집단주의 군중 구조가 만들어내는 시스템적 현상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독립적 이성과 자기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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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효과, MZ세대의 개인주의탓?"

— 가스라이팅 멈춰라. 집단주의 문화탓이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많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한 이태원 참사 현장의 비인간적인 반응들은 MZ세대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쾌락주의, 몰상식함 때문이 아니다.

이건 엄연히 따지면 제노비스 신드롬(방관자 효과)을 발현시킬 수밖에 없는 집단주의 문화의 하나의 현상이었을 뿐이다.

이전 몇몇 게시글들 속에서 집단주의를 경계하고 개인성을 보호하라고 그렇게 외쳤던 이유가 개인이 거대한 집단무리 안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객관적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군중무리의 덩어리에 일체화가 되어 군중 밖의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해져버리기 때문이다.

1963년 키티 제노비스는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자신의 집 앞에서 어느 한 남자의 공격을 받고 칼에 찔리는 사건이 있었다.

제노비스는 그 옆을 지나가는 수십명의 이웃들을 향해 경찰에 신고해달라 거듭 요청했으나 그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경찰에 처음 신고한 것은 사건이 일어난지 30분이나 지난 후였다.

모든 이웃들이 극단적 개인주의자들처럼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심리학자 빕 라타네와 존 달리는 간질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연기자)이 있는 현장속에 1. 혼자만 있는 경우 2. 두세명 정도의 소수의 무리가 있는 경우 3. 많은 수의 무리가 다함께 있는 경우로 나누어서 실험을 하였다.

연구결과 혼자만 있는 경우 85%가 즉각적으로 도와주었지만 관중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 수치는 60%, 10%로 떨어졌다. (정확한 수치는 실험 내용마다 달랐지만 공통적인 결과는 대중의 수가 증가할수록 무관심의 정도도 커졌다는 것이다.)

또한 도움요청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시간도 집단무리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시간이 지연되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이 방관자 효과는 이태원 할로윈 참사에서 나타난 대중들의 모습을 통해 집단주의 군중속의 개인들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 행태가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를 설명해준다.

이러한 방관자 효과는 나 혼자 있을때는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며 책임감도 강해지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면 다른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판단의 우유부단함도 동시에 커져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참가한 대부분의 MZ세대들이 극도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그러한 몰상식하고 비인간적 비이성적 행태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누구라도 거대한 집단의 군중무리 속에 들어가 있으면 집단밖의 상황에 대해서 무책임해지고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건이 지난 뒤 그것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사람은 그 군중의 무리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현장에 있더라도 그 집단무리 밖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들도 정작 그 집단안에 존재하고 있었으면 아마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몰상식하게 그런 밀집된 곳으로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면, 에리히 프롬은 답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고립과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것도 하게 된다고 말이다.

수년간의 코로나 시국에 더더욱 디지털로만 소통하는 MZ세대들은 고독의 고립감이 그 어떤 세대보다 클 수밖에 없다. 어른들의 세대처럼 대면 소통을 하며 살아본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많은 저서들 속에서 인간은 고립의 공포를 가장 두려워하며 자신의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독립적인 자유와 소신있는 판단력을 버리고서라도 집단의 군중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마음으로 군중속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개인이 어떻게하든 그 군중들과 그 분위기속에 동조하려고만 하지, 자기만의 독자적인 판단력으로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지금 여론에서 MZ세대들에게 이기적이다, 몰상식하다, 개념이 없다며 공감능력이 없어서 그렇다느니 개인주의 성향을 고쳐야 한다느니 어쩌고저쩌고 비난들을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몰상식한거고 이해력이 없는거다.

군중심리라는 사회심리학적 용어가 괜히 나왔겠는가?

거대한 집단안에 개인이 들어가게 되면 몰상식해지고 비이성적으로 되어버리는게 당연한거다.

냉철한 이성은 나 혼자일때 생겨나는 것이고, 옆사람이 함께하고 또 그 함께하는 무리의 사이즈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 개인적인 성향이나 독립적인 주관은 쉽게 드러낼 수 없게 된다.

밀집된 군중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독자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그저 군중속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호명령 소리에 아무생각없이 따르는 반응적인 도구가 되어버릴 뿐이다.

게다가 전체적인 소통이 불가능하게 한 강렬한 음악소리까지.

이태원 참사를 통해 MZ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굳이 따져야 된다면 그들은 오히려 더더욱 개인주의로 나아가야 맞는거다.

아무리 MZ세대의 개인주의 성향이 나쁘다고 해도
개인적 이기주의는 기껏해야 주변사람들 이익이나 빼앗고 눈꼴시리게 하는 정도이지만

집단적 이기주의로 매몰되면 그건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이고 국가를 전복시키는 수준이 된다.

이것은 대중심리를 연구했던 학자들 한나 아렌트, 알렉시스 토크빌, 데이비드 리스먼, 에리히 프롬, 오르테가 Y 가세트, 월터 리프먼 그 모두가 개인이 집단속에 매몰되면 개인성을 잃고 비이성적인 폭력적 덩어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만약 어떠한 사회적 여론이 지금의 MZ세대들에게 그들만의 개인주의를 비난하며 집단주의로 포섭하고자 세뇌시키려고 한다면 이건 사회적 권력이 MZ세대들을 심리적으로 조련하기 위한 가스라이팅임을 알아채야 한다.

사회가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사람들이 갈수록 무개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언론이나 사회적 여론이 사회의 기본개념들을 왜곡하여 잘못 써버리며 사람들의 정신머리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기본개념들을 바로잡기 위해 그 당시 아테네를 장악하고 있었던 소피스트들과 하나하나 맞짱 뜬 이유가 다 그런 것들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사회속에서 보여지는 비이성적 행위들은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들보다 집단속에 매몰되어 있는 군중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더 많다.

수십년동안 집단주의 문화를 축제처럼 여기게 만든 장본인들이 누구인가?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높은 수준의 이성과 덕성은 개인이 자발적인 독립성을 키워내는데서 발달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역지사지를 가능케 하는 동감과 공감의 이타적 원리 또한 이성의 범주이지 감성의 영역이 아니다. 감성에 충만해지면 오히려 역지사지가 불가능해진다.

결국 감정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감성팔이와 자유주의를 말살시키는 집단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덕성을 통한 역지사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이는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흄, 몽테스키외,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제는 집단으로부터 해체되어야 한다.

개인으로 돌아와서 나만의 냉철한 이성을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 공존에 필요한 역지사지, 공감능력, 배려심, 소통능력 그 모든것을 발달시킬 수 있다.


(덧붙임) 디지털 소통만으로 고립감이 심해지는 MZ세대들에게 대면소통을 할 수 있는 축제같은 것에 아예 참가하지 말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최선은 “소규모” 축제들과 모임들을 통해 대면 소통을 이루어 나가는 식으로 그들의 고립감을 해소시키는것이 안전면에서나 고립감을 해소시키는 소통면에서도 그나마 이로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고독감은 진짜 내 자신을 찾아내고 그것을 세상에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해소되는 것이지 남들과 부대낀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집단적 군중 무리 속에서의 방관자 효과는 누군가가 한명이 군중의 무관심을 뚫고 행동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같이 힘을 보태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군중심리의 연쇄작용을 잘 이용하면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움직이게 만들수도 있다.

다만 방관자 효과를 깨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빠른 도움을 요청하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사람을 정확하게 특정하여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 “저기 파란모자 쓰신 안경 쓴 아저씨, 지금 당장 119 불러주세요. 빨간티 입은 여자분은 제 손을 잡아주세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특정인을 지명하여 구체적인 요청사항을 말하면 그 사람은 책임감을 느끼고 도와주게 된다고 한다.

군중심리의 부정적 연쇄작용을 중간에 끊어낼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냉철한 이성과 주관적 자기판단이다. 집단주의적 축제문화를 안전하게 즐기고 싶다면 평상시에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자기 이성을 바로 세워내는 습관을 꾸준히 키워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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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루틴의 힘, 멘탈 털려갈때 나를 버티게 지켜주는 삶의 지지대

Pure Intuitive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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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은 예측 불가능성과 무력감 속에서 붕괴되는 인간에게 자아통제감을 회복시켜 주는 심리적 지지대이며 반복되는 행동의 관성이 멘탈 붕괴 상황에서도 개인의 삶과 주변까지 지탱하는 가장 단순하면서 강력한 안정 메커니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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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주변에 휩쓸려 멘탈 털리고 무너지려 할때 나를 버텨내게 해 주는 힘"

— 루틴을 유지하고 루틴에만 매달려라


인간은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를 기피한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엄청난 피로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피로는 대개 근심 걱정에서 비롯되므로 이러한 근심 걱정은 인생관을 바꾸고 정신적인 훈련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이 평화롭고 안전한 것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공포 그 자체임을 직면해 본 사람들은 마음속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내 인생이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지고 의미 없이 느껴져 그 무엇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나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아통제감"같은 것이 강하게 존재할 때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도 안정감을 찾고 자신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내가 마음이 너무 힘들고 멘탈이 붕괴되었을 때는 의지할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타인에게 기대는 것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루틴"이 중요한 것이다.

나 자신에게 나에 대한 자아통제감을 채워줄 수 있는 “루틴"을 설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오랫동안 이어나가는 반복되는 패턴이 정말 중요하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

아무리 멘탈이 깨져도 내가 하고 있던 것 그대로 내 패턴을 유지하는 것.

이런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습관은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거나 갑작스러운 혼란을 겪게 되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준다.

혼란스러운 환경속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한다는 것은 비인간적이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버텨내고 내 인생을 흔들림 없이 살아내야 내 소중한 주변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

한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 도미노처럼 모든 사람이 무너지게 된다는 교훈을 알고 있다면 내가 무너지지 않게 우선은 나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너져도 남이 알아서 구해주겠지?
세상은 그런거 없다.
내가 무너지면 옆사람도 무너지고 세상이 다 무너지게 된다.

여전히 두려움 많고 나약한 나 자신이 남에게 의지함 없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내 정신을 부여잡을 방법은 바로 자기만의 루틴에 의지하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자기만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생활 루틴이 있다면 그것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관성의 힘에 의지하여 나를 버텨낼수 있게된다.

설령 지금 그마저도 할 의욕조차 없을 정도로 삶이 붕괴된 상태라 하더라도 자기만의 루틴이 있던 사람은 늦게라도 정신이 들면 그 루틴을 시작으로 금방 삶을 재활시켜 낼 수 있다.

내 멘탈이 무너지지 않아야 내 주변도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무너지지 않음은 곧 세상을 지켜내는것과 같은것이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가 아니라
모든 것은 나로 시작되는 것이다.

정신이 혼란스럽고 멘탈이 털리고 있을 때는 루틴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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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인싸 VS 아싸, 어떤 성격으로 살아가는게 좋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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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와 아싸는 선천적 성격 유형이 아니라 사회 환경에 따라 조정되는 행동 전략이며, 가장 바람직한 인간 유형은 상황에 따라 집단 협력과 개인 독립성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자율형 인간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독립적 아웃사이더가 자유를 보호하고,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협력적 인사이더가 공동체와 개인 모두에 이롭게 작용한다. 따라서 고정된 성격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판단해 행동을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간 행동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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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와 아싸 뭐가 더 좋은걸까?"

— 자율형 인간은 인싸 아싸 경우에 맞게 다 된다.


나는 선천적으로 인싸일까 아싸일까?
인싸로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아싸로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우리는 성격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사회속에서 나타나는 성격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조정되어진"것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개인의 성격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은 나의 생활양식을 타인과 어우러지게 하는 사회과정 속에서 자신의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에서도 개인적 퍼스낼리티와 사회적 성격은 다른 것이라며, 사회적인 성격은 일종의 페르소나와 같이 타인 지향적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쓰는 가면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더더욱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타인 지향적인 속성 때문에 자신이 사람들 앞에 보이는 성격은 진짜 내 성격과는 다른 것일 수 있다.

또한 지금 처한 환경에 따라 자신의 생존과 적응을 위해 천성과 다른 성격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싸나 아싸 또한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다른 사람들과 삶을 함께 즐기는 인사이더들은 정석대로라면 역지사지가 잘되고, 공감력이 좋으며, 배려를 잘하기 때문에 타인을 위해서 자신만의 이기적 욕구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인싸의 성격으로 살아갈 수 있다.

가끔 인싸를 단순히 친구가 많고 SNS에 즐기는 사진을 매일같이 올리는 사람을 인싸로 알고 있는데

만약 그러한 사람이 역지사지가 안되고 이기적이며 남에게 배려를 안하고 내 욕구만 중요하게 생각하여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인싸가 아니라 그냥 이기적 쾌락주의자일 뿐이다.

그걸 착각하면 안된다.

인싸문화라는 것은 공동체를 중시하고 배려심으로 역지사지를 잘하여 서로 더불어 사는 것을 가능케 하는 문화를 말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소외되는 사람없이 어떤 누구라도 모두 함께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인싸들의 능력이다.

반면에 아싸들은 극도의 자유와 자신만의 소신있는 생각,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자들로서 그 자유에 뒤따라오는 고독마저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극도의 자유를 추구한다고 하면 내 욕구대로 멋대로 하는 것이나 쾌락을 마구 즐기는 걸 자유로 착각하지만 그건 자유가 아니라 쾌락주의일 뿐이다.

자유는 내 정체성을 온전히 고수하기 위해 내 모습 그대로 소신껏 내가 옳다고 생각대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게 자유주의자들의 성향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자가 될 수 있으려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무엇이 진짜 나이고 무엇이 남과 다른 내 모습과 내 생각인가를 분명하게 아는 자만이 자신의 정체성대로 소신있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정체성을 지키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 아싸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기 어려워하고, 남한테 비위맞춰 애써 잘보이려 하거나 나와 다른 남의 감정에 공감하고 동감해줘야 하는 것들을 상당히 피곤하게 생각한다. 그냥 너는너 나는나 이 뚜렷한 경계를 허물기를 싫어한다.

자유를 추구하는 소신이 강해지면 자발적으로 철저한 아웃사이더로 존재하기를 원하게 되고 또한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걸림없는 자유를 누리고 살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인싸와 아싸 그 무엇이 더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 전에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니 만큼 지금 사회환경의 분위기나 대중여론의 속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인 분위기나 작동행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내가 나의 캐릭터를 무엇으로 잡고 살아가야 나에게 이롭고 공동체에도 이로운 것인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리스먼은 인싸와 아싸와 같은 사회적인 시선에 반응하는 타인지향형의 인간과는 별도로 “자율형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자율형 인간들은 그 기본 베이스는 아싸의 성격처럼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할 줄 알며 남들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자율형 인간들이 아싸와 한가지 다른 것은 그들은 상황에 따라서 인싸도 충분히 가능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자율형 인간들은 전체적으로 사회의 행동규범에 동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것에 동조할 것인가 아닌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율형 인간은 개인의 개성이 몰살되는 집단주의로 사회분위기가 흘러갈때는 독립적이고 주관적인 아싸로 살아가고, 개성과 각자의 주관이 존중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협력적 인싸로 살아가며 자신과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어 낸다.

결국 우리가 인싸와 아싸 어떤 것으로 선택해야 나에게도 좋고 공동체에도 좋은 것인지 판단을 내리자면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인싸로 살아가는것이 이롭고, 집단주의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아싸로 살아가는 것이 이로운 것이 된다.

서로의 개성과 개인의 자유, 각자의 감정이 모두 존중받고 보호받는 세상에서는 공동체와 어울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서로의 개성을 더욱 빛나게 하고, 각자의 다름이 보호받는 사회가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인싸로 살아갈수록 내 자신에게도 공동체에게도 이로운 것이지만

집단주의로 개인의 개성을 죄악시하고 나만의 특별한 생각이나 감정을 별종으로 취급받고 놀림당하고 집단린치당하게 만드는 그러한 일원화된 생각이나 감정이 강제주입 당하는 사회에서는 차라리 아싸로 살아가며 개성을 지켜내는 것이 내 자신을 지키고 공동체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길이 된다.

내가 인싸로 살아갈 것인가 아싸로 살아갈 것인가는 이런 식으로 사회적 환경과 내 자신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바른 이성을 발현시키는 과정에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인싸든 아싸든 자기 쾌락만 중시되고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해소하는 것만 최고의 가치로 아는 이기적 쾌락주의자들은 그들이 인싸인척하든 아싸인척 하든 상관없이 그들은 인싸도 아니고 아싸도 아닌 그저 이기적 쾌락주의자일 뿐이다.

그들은 집단주의 사회이든 자유주의 사회이든 그 어느세상에서도 세상의 민폐가 되고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사건 사고를 몰고다니는 사람이 된다.

이기적 쾌락주의자들은 집단주의 사회로 흘러갈때는 다수여론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집단동조적으로 되어 대중권력의 도구로 악용되고,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협력을 교란시키는 훼방꾼이 되어 사회를 파괴시킨다.

우리는 일단 이기적 쾌락주의자가 자유인이라거나 인싸라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하며, 인싸와 아싸 그 둘중 어느편으로 정해서 살아가려고 하기보다는 자율형 인간이 되어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을 한뒤 그에 맞춰 사회와 개성의 힘이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내 자신의 행동규범을 자유자재로 주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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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왜 우리는 집단주의 축제문화에 열광하게 되는 것인가?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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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 Persona: Shadow J.
Section: reflections
Section Display Name: Reflections on the Human Condition
Reasoning Type: Hybrid Reasoning (Evidence + Insight)

Core Insight: 인간은 고독과 무력감의 공포를 견디기 어려워 자유를 포기하고 집단 속으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집단 축제·대중 집회·군중 동조는 이러한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려는 욕구에서 발생하고 권력은 이를 이용해 개인의 독립적 이성을 약화시켜 집단적 도구로 만들 수 있다는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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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유를 두려워한다. 자유는 고립으로 들어가게 만들고, 고립은 인간을 고독감과 무력감의 공포에 견딜수 없게 만든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자발적 성장만이 해결책이다.


전 세계 코로나의 전파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게 만들었다.

사람을 고립시키는 상황은 인간을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발자크는 『발명가의 괴로움』에서 “인간은 고독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으며 모든 고독중에서도 정신적인 고독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라고 표현하며 인간이 고독을 피하려는 욕구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의 공포가 왜 인간을 그렇게 사로잡고 있는가?
인간은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 한 혹은 삶의 의미와 방향이 없는 한 인간은 자기자신을 한낱 티끌처럼 무의미하게 여기고 현실에 압도당하고 말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고립을 있는 힘을 다해 피하려고 한다.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라 생각하지만 인간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힘겨운 일임을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년)에서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한 속성을 설명해 놓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유로운 삶이란 내 꼴리는대로 내맘대로 내 욕구 분출을 멋대로하고 하고싶은거 실컷 다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쾌락주의에 가깝고, 철학에서 이야기 하는 자유라는 것은 오직 나만의 정체성을 찾아내어 그것을 소신껏 고수하여 눈치보지 않고 내 길을 가는것을 말한다. (정확히는 소극적 자유냐 적극적 자유냐로 자유를 구분하는데 그것은 다음에 살펴보겠다.)

프롬이 보기에는 자유의 길이라는 것은 나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로써 세상으로부터 나혼자 분리되어 고독감과 무력감을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상당한 심리적 불안과 동요를 일으키게 된다고 하였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독감과 무력감을 떨쳐내고자 두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고 하는데

첫째는 자유를 포기할 수 없어 더욱더 깊은 고립을 감수하여 그것을 자아의 개발과 자기발전의 동력으로 더 큰 세상과의 자아의 합일을 이루는 식으로 고립감과 무력감을 뚫고 나아가는 방법

둘째는 고독과 무력감의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여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집단속에 있고자 하거나 타인에게 종속되는 것을 택하는 것

첫째 더욱 고립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무력감과 고독을 느껴야만 인간적 발전이 일어나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오히려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고립과 무력감을 해소하고자 한다. 고립과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고립과 무력감 그 자체를 에너지로 쓰는 경우이다.

인간의 자유의 성장과정은 개인의 성장과정과 같이 변증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

자기만의 개성화(자유)가 진행됨에 따라 고독이나 불안이 커지고 자기 존재에 대한 의혹도 심해져서 개인에 대한 무력감이 커지게 된다.

그러나 고독과 무력감이 커지는 정도에 맞춰서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 의미있는 것들로 채워나갈 수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개성화)도 지켜내게 되면서 더 큰 세상과 소통을 이루어 나가는 길이 열려 오히려 고독감과 무력감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이런것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고독감과 무력감은 저절로 커져가는데 그에 발맞춰 채워져야 할 자기 개발이나 성장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런 성장도 하지 못한 채 고독감과 무력감의 크기만 가중되어 인간은 결국 고독과 무력의 공포앞에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그래서 결국 두번째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추구하고자 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고독과 무력감을 줄여줄수만 있다면 나의 자유를 구속하고 빼앗아도 기꺼이 그것을 포기하고 그가 자신의 권력쟁취 도구로 악용하거나 욕구해소용으로 나를 그의 도구로 만들어 악용한다고 해도 속수무책으로 그것을 감수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 기원』에서 국민들이 전체주의의 도구화가 되어가는 과정은 정확히 아래의 과정을 따른다고 하였다. 이것은 국민들을 권력의 도구로 악용하려 할때뿐만 아니라 개인이 개인을 자기 욕구의 도구로 가스라이팅을 할때도 사용하는 수법이다.

1.국민들을 고립화시킴
2.모든 소통을 차단해 고독감을 극대화시킴
3.자유를 포기할 정도의 고통을 느낄 때 집단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해
4.압도적이고 강력한 권력의 도구로 사람들을 지배해버림

인간을 조련시키고 지배하는것은 고립만큼 강력한 도구도 없다.

집단에 동조하는 것은 고독을 극복하는 보편적인 수단이다. 집단에 동조하는 행위는 한 개인의 자아를 극도로 사라지게 하고, 그를 집단의 일원으로 만든다. 이러한 동조를 유발하기 위하여 독재적인 체제는 위협이나 공포를 사용하기도 한다.

무언가 이슈를 만들어 동감과 공감의 감정을 강제적으로 주입하고 대중여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범죄시한다. 그들에게는 생각의 자유와 감정의 다양성이 존재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동조적인 인간으로 조련한 뒤 축제나 집단집회와 같은 대중무리속에서 어느 한사람이 구호를 외치면 그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어디선가 외쳐오는 구호명령에 좀비처럼 따르게 된다. 집단의 무리속에 들어가 있으면 구호명령에 반응적으로 따르는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지 그 당시에는 전혀 판단을 하지 못한다.

단지 고립되고 싶지 않다는 욕구로 집단속에 들어가 자신의 독립적 이성을 잃고 명령 구호에만 반응하는 도구가 되어버린다. 고립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깊은가를 안다면 다른 사람과의 다름을 추구하는 두려움의 정도 즉 일반대중과 조금이라도 자신이 동떨어져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공포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비이성적 군중심리는 인간의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악용하여 조장되는 것이다.

코로나 3년동안 사람들과의 소통이 차단된 고립된 생활은 인간들을 충분히 고독과 무력감의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태원 할로윈 축제나 대중집회 집단시위와 같은 집단주의적 문화에 사람들이 미친듯이 열광하고 몰려가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사람들이 고독감과 무력감에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아왔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개인의 고독과 무력감은 보통사람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매일같이 판에 박힌듯한 활동, 모든 종류의 기분전환, 즐거움, 교제, 유랑 따위로 은폐된다.

그러나 고독과 자신의 무력감의 공포는 해소되지 못한채 여전히 남게 된다. 그래서 뭔가 더 나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흡수해줄 다른 특별한 것이 없을까 정처없이 헤매이게 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기 자신의 고독감과 무력감을 해소하고자 집단이나 타인에게 종속되는 것으로 해소시키려 하는 것은 진정한 해소방법이 아니라고 보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하지 말고 오히려 자발적인 적극적 자유의 길로 전진해 나아감으로써 자신의 일이나 생활 사적 관계들간의 감정적, 지적인 능력의 순수한 표현과 자발적인 개발을 통해야만 내 자신을 세계와 결부시켜 고립과 무력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에게 외로움과 공포감을 주는 고독감에 절대 무너지지 말고 그것을 뚫고 용기있게 나아가야만 내 자신의 인생 소명과 진정한 나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되고, 나만의 빛을 뿜어내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할 수 있게 될 때 고립으로 인한 고독감과 무력감을 일시에 해소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야 할 것은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의 인생을 투신할 곳을 찾지 못하면 헛된 것에 몰두하다 죽음으로 투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고독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내가 진정 투신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만일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만일 내가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란 존재는 대체 무엇인가
만일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이를 소중히 여길 때는 또 언제이겠는가

-솔로몬,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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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여성 징병제 문제, 남녀평등의 시대에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까? (feat. 군사기본교육 의무화?)

Pure Intuitive Insight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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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여성 징병제의 평등 논쟁은 동일 군복무가 아니라 남녀 모두가 공공 의무복무를 통해 공동체 경험과 공익 헌신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때 국민 자강과 사회 통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으며, 군사조직은 전투 효율성을 유지하고 사회는 공공정신을 확대하는 이중 구조가 바람직하다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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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공적 생활에서 배제하는 것은 인류가 가진 지적·도덕적 자산의 절반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교육을 받고 동일한 공적 의무에 참여할 때, 두 성별 사이의 진정한 이해와 통합이 이루어진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함께 헌신하는 경험은 남녀 모두에게 '공동의 인간성'을 깨닫게 하며, 편협한 이기주의를 극복하게 한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김기현 의원이 여성의 군사기본 교육 의무화를 주장하면서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자강이 시작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일부에서는 여성 징병제가 진지하게 논의되어고 있다고 한다.

여성징병제가 불가피해진다면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군대조직이나 경찰조직 등 현장에서 여성이 행정인력이 아닌 전투인력으로 육성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특히 적과의 전쟁을 통해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게 되는 군사조직은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전쟁시에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살아남을 수 있다. 동료의 죽음과 무자비한 살상 앞에 감정이 동요되지 않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명령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무기 그 자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냉정하게 따지면 인권보호나 자유같은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되고, 철저한 규율과 지엄한 명령에 따라 혹독한 금욕과 감정의 차단이 요구되어야 한다.

그래서 군대조직에서 상명하복에 불복하거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나 금욕을 참아내는데 해가 되고 감정을 나약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은 군대조직을 자멸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군대에서 인권이나 자유 같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게 죽고죽이는 전쟁터에서 바캉스를 누리겠다는 소리만큼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곳에 여성이라는 감성적이고 약한 존재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군대조직을 교란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 한 여성에게도 국가적으로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

남녀 평등 시대에 여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라는게 웬 말이냐고?

물론 그렇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여자라고 험한 일을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왜 여성 장교나 여성 부사관, 여성 경찰들을 채용할 때 체력요건이 남성보다 낮게 설정되는가? 그렇게 사회적 약자의 배려를 받고 낮은 조건으로 채용된 채로 업무강도도 상대적으로 낮게 일을 하면서 차별 대우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날로 먹으려는 심보 아닌가?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채용조건으로 군대나 경찰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남자들은 그들을 보며 불공정함을 느끼게 되고 남성이 뽑혀야 할 자리에 여자가 들어가서 그녀가 1인분도 해내지 못하고 0.5인분만 하게 된다면 그녀 때문에 동료 남성 군인은 1.5인분을 더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평시에 생활을 한 남녀 군인들이 전시가 되면 남성 군인들은 2배로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것을 인정할 수 없고 여자도 남자 못지않은 전투병력이 될 수 있다면 그 채용조건은 남자와 여자 동등해야 될 것이고, 일할때도 평상시 남자들이 하는 노가다를 여자들도 똑같이 다 해야 한다. 제초기를 돌리든 제설작업을 하든 탄약통을 들고 옮기든 똑같이 남군이 하는 만큼 해내면서 업무성과도 남군이 하는 이상으로 잘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신체적으로 약해서 채용조건이나 평상시 업무도 배려 받아야 한다면, 여자보다 신체적으로 작고 가벼운 남자들은 지금 배려 받고 있는가? 왜소한 남자들은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신체 여건보다 버거운 일들을 매일같이 감당해야 한다.

결국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조건을 남성보다 쉽게 책정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평등을 이루고자 한다면 남녀 할 것 없이 체급으로 따져서 평가되어야 하지 남자와 여자의 기준으로 나누어 평가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다. 체급조건으로 여자의 채용기준에는 들어맞지만 남자의 채용기준에는 맞지 않는 왜소한 남자 지원자의 경우가 가장 억울할 것이다.

오히려 군대나 경찰조직에서 여성을 차별받지 않게 일할 수 있게 하려면 채용조건이 남자보다 더 엄격하고 혹독하게 해서 그럼에도 그 일을 하고자 하고 기꺼이 해내는 강성 인력들만 뽑아야 한다.

군대처럼 공동체 정신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내가 고생한 만큼 남도 고생하고 서로 같이 똑같은 고생을 할 때 서로 동지애가 싹트고 공동체 정신이 커지게 되어 상부상조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는 남자라는 이유로 1.5인분을 일을 하고, 누구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보다 덩치가 큰데도 0.5인분 정도만 일을 하게 된다면 그런 조직에서는 서로간에 불신과 증오만 싹트게 될 뿐 그 어떤 단합이나 공동체 정신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2019년 국가인권위에서 발표한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남성간부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여군들은 “차별"의 요소를 가장 큰 인권침해로 생각하였고, 그 비율은 26.4%라고 한다.

군대에서 인권이나 자율같은것을 조장하기 위해 저런 여론조사를 하는 것도 웃긴거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26.4%는 군대에서 무능하게 잉여로 있는 여군의 비율이 저 정도라는 뜻이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때는 주의해야 하는것이 동등하지 않게 채용되고 동등하지 않게 일을 하는데 거기서 동등한 대우를 바란다는건 역차별이다. 저 여론조사에서는 남성군인들을 상대로 ‘여군에 비해 역차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의 내용이 있어야 그나마 공정한 인권실태 조사가 되었을 것이다.

혹자는 여성의 군대 내 차별과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문제는 군대 내 여성간부의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무슨 벼룩잡기 위해 초가삼간 다 태울것도 아니고 군대 조직 자체가 위계질서와 명령에 절대복종을 해야 하는 속성의 조직인데 그게 아무리 인권적으로 나쁘게 보인다 해도 그곳은 그렇게 해야 전쟁이란 생사의 고비에서 살아남고 국민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런 조직을 그냥 그렇게 존속하게 하는 것이 국방에 이로운 것인데 그게 나쁜거라고 여성군인을 늘려서 군대내 인권침해과 위계질서를 없애겠다고?

우리가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악한 속성이 단지 악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악의 속성 그 자체로 존재해야만이 국익에 쓸모 있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군대 조직이 국방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그들 자신의 인권이나 자율을 기꺼이 포기하고 일정기간 혹은 평생 자신을 희생하는 이유가 바로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더 중요하게 여성이 군대같은 남성적 투쟁적인 조직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에리히 프롬의 <여성과 남성은 왜 투쟁하는가>에서 보면 여성이 강해진다는 것은 남자처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을 키워냄을 의미하고, 여성성을 키워 낸다는 것은 남성성의 특징인 투쟁과 전투, 상대를 죽이는 힘이 아니라 남을 살리고 보호하고 육성하는 그런 모성애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여성이 진정으로 남자보다 강해지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자가 군대같은 조직에서 남자만큼 실력을 발휘하며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여성성을 파괴하고 죽여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여성 자신을 위하는 것도 아니며, 국가를 위한 길도 아니다.

여성 군인이란 존재는 기껏해야 그저 개인 사적으로 인생의 도전욕구 하나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 그 어떤 사익도 공익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여성징병제의 형태가 아닌 남자와 같이 국가를 위해 공익에 헌신하는 “의무복무기간"과 “예비군 민방위 제도” 같은 것을 여자도 똑같이 이행하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나 국가적으로도 이로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정부론』과 『여성의 종속』 등에서 공동체를 통합시키려면 공통의 감정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것이 민족 구성원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강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밀이 강조하는 것은 개인이 공공기능에 참여하게 되면 사적인 이익만을 생각하던 사람도 도덕적인 측면이나 개인적인 자질 측면에의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남자들이 군대갔다오면 철이 든다고 하거나 사람되었다고 하는 소리가 다른게 아니다.(물론 요즘은 군대가 자율과 인권이 범람하고 여군까지 늘어나고 개인 휴대폰까지 소지하게 만들어 군대조직이 박살나고 있는 분위기라서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군대조직이 정상으로 돌아갔을때 한정해서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는 군대다녀오면 사람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던 이유가 개인이 성인이 되자마자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공익에 아무조건 없이 온전히 헌신하는 경험을 해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며 공동체 정신을 함양시켜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역지사지와 정신적 성숙이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젊은 청년들이 자기자신을 위해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이다.

예전 이승만 정부때부터 박정희 정부때까지는 군대가 최신 최고급의 기술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기때문에 군대에 다녀오면 일반인도 기본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좌파정부에서는 군대를 가는 남자들을 “도살장 끌려가듯"하는 이미지로 만들어 공공에 헌신하는 그들의 훌륭한 가치를 후려치기 하였으며, 군대조직 자체도 인권보호니 자율이니 이러한 핑계로 공공에 헌신하는 정신을 기르지 못하는 곳으로 붕괴시키고 있다.

그러한 군대환경에서는 그 어떤 공공정신도 배울 수 없으며 개인이 금욕하여 공익과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인내력을 어떻게 키워낼 수 있는지 알 방법도 없게 된다. 공동체 정신은 키울 수 없고 오직 개인의 욕구만 남용하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만들 뿐이다.

군대조직은 남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기전에 공공정신을 기르고 자기 욕구를 극기하는 정신을 키워내 공동체 정신에 가장 중요한 역지사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군대내 폭행문제는 역지사지와 공동체 정신을 키워내는 것에 달린것이다.

여자들은 남자와 같이 그런 군대조직에는 못들어가는 대신(들어가봤자 남녀모두에게 해악임) 다른 국가기관 및 연구소, 복지기관, 공공기관, 병원 등등 이러한 곳에 남자의 복무기관과 동일한 기간, 동일한 시기에 똑같이 의무복무기간을 설정하고 예비군 제도처럼 평생에 걸쳐 정기적으로 교육받으며 공공정신을 기르고 역지사지를 배우는 시간들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남녀 모두 의무복무기간을 이행한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취업이나 승진시에 가산점을 제공하고, 전방이나 험지, 오지 등 열악하고 힘든 기관에서 복무하고 예비군 민방위처럼 정기적으로 교육받는 사람들은 가산점에 더블 가산점을 제공하면 빽있고 돈있는 사람들만 쉬운데에 복무하면서 혜택은 똑같이 누리려 하는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요새 전쟁은 정보전, 세균전, 여론전 이런걸로 싸우는데 위와 같이 될 수 있다면 여성징병제나 여성 기본군사교육 같은거 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자강할 수 있게 되고 국가 비상시에 전 국민이 각계 각 분야 비상인력으로 투입되어 국가의 국방은 적은 인구수로 효율적으로 방위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도 줄일 수 있어 세금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국가의 징병제도가 운영될 수 있다면 밀이 『대의정부론』에서나 『여성의 종속』에서 이야기한 공동체 통합을 이루는 공동의 경험을 남녀 모두 함께 할수 있게 되고, 남녀 모두 성인이 되자마자 공공정신을 함양시키는 경험들을 통해서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인격적 성숙과 개인의 잠재력 발굴 등 개인적으로도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기현 의원이 주장하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여성 의무화라든지 여성징병제는 물론 취지는 이해하고 동감하나 그 효과의 면에서 볼 때 그닥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큰 효용이 없어보여서 남녀 갈등만 더 부추기게 될 것 같다. 뭐 공공기간의 의무복무 기간 직전에 4주간의 군사훈련을 상식선으로 경험해두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김기현 의원이 말한 국민 자강능력을 키우려면 고작 4주간의 군사훈련 받는 걸로는 아무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하는 것과 같은 의무복무기간을 동일하게 이행하여 여자도 공익에 헌신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인격적 성숙과 자아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버텨내는 과정을 다함께 겪어야 국민 통합과 동시에 국민자강능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여성징병제를 충분히 하고 있고, 다른나라 군대에서는 인권이 보장되며 자율적이라며 우리 대한민국의 군대문화만 너무 억압적이라며 엉뚱한걸 갖다붙일 생각을 말자. 말이 되는가? 그 국가들은 우리 대한민국처럼 사방이 죄다 무력과 침공을 좋아하는 깡패국가들에 포섭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러시아, 중국,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그 뿌리는 사무라이들이다. 이런 국가들을 상대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군대는 당연히 그 어떤 국가보다 강압적이고 위계질서 철저하여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군인들이 양성되지 않으면 그들중 어떤 누가 침략했을시 절대 방어하지 못하고 자멸하게 될 뿐이다.

선진국에서 경험해보지 않은 거라고 불가능하다 생각하지는 말자.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누군가를 벤치마킹할 때는 넘어섰고 우리가 선도하는 뭔가를 만들어서 다른나라가 벤치마킹하러 오게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이제 퇴보만 남을 뿐이라고 『축적의 시간』의 이정동 교수가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선도하고 다른 국가들이 벤치마킹하러 오고 그런식으로 전 분야를 발전시켜야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도 그것을 뚫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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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힘없는 한명이 다수랑 맞짱떠도 이길수 있는 세상이어야 민주주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 존 스튜어트 밀 『대의정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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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지성과 덕성을 갖춘 개인이 다수의 이기성과 집단 감정에 맞서 소신 있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민주주의로 기능하며, 밀의 대의민주주의는 이런 숙련 민주주의의 조건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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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가진 한 사람이 단지 이익만을 좇는 천만명과 비등한 사회적 힘을 가진다"

— 존 스튜어트 밀, 『대의정부론』// 비주류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한명이 다수랑 맞짱떠도 이길수 있는 세상


밀의 『대의정부론』(1861년)은 벤담식 공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힘없는 개인이 일부 집단의 이기주의에 희생되지 않을 방도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책이다.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통해 나온 정치이론을 수정한다.(양적 공리주의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불가능하다. https://shadowj.org/reflections/qualitative-utilitarianism-mill/)

결론부터 말하면, 사회적 행복의 총합을 이끌어내는 좋은 정부는 개개인의 이기적 선호의 총합을 극대화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각자의 ‘인간성’의 계발을 위해 ‘덕성과 지성의 총량을 증대시키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각자의 덕성과 지성을 발달시켜 자발적 능력을 스스로 획득하는 인간을 많이 만들어야 함을 주장하는 이유는

밀은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같이 선하고 능력 있는 독재자가 국민들을 위해 그 모든 것을 다해주는 것은 국민을 무능하고 무력하게 망칠 뿐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밀이 그러한 선한 독재자의 다스림을 긍정하는 경우는 오직 자유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노예들이나 계몽되지 못하여 지성과 덕성을 갖추지 못한때에 한해서인데, 그들에게는 선한 독재자의 다스림으로 스스로 통제 못하는 자유를 제한하는것이 더 이로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는 상태라면 그들 스스로 자발성을 길러주는 편이 이롭다고 보았다.)

밀은 국민들 스스로 자발적인 능력과 실력을 키워냄으로써 각자 자기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자기의 분야만큼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자신이 대표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과 덕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 어떤 훌륭한 위정자가 국민을 대신 대변해준다고 해도 그들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의 입장 그대로를 헤아리고 그것을 실현시켜주는것은 어려운 것이라 보았고, 그 누구도 자기 문제는 자신이 판단하고 해결할 때 가장 만족스럽게 해결되므로 외부의 누군가가 대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고, 나의 최대의 행복에도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밀은 내 문제를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실력과 지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스스로 힘쓸 생각을 하지 않고 남에게만 의존하려고 하는 마음으로는 누군가의 노예나 국가의 노예로 전락될 뿐이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루소의 직접민주주의와는 다른 것인데, 밀이 직접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유는 국민 개개인 모두가 국정의 모든것을 바르고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업을 포기한 못한 채 정치, 행정, 입법, 사법 이런 고도의 전문분야에 모든 사람이 매몰되어야만 가능한 것인데, 이것은 딱보기에도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일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 복잡한 전문적인 문제들을 국민들 모두가 직접 판단하고 매번 국민들이 결정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보면 국민을 자기인생 못살게 만들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시키는 꼴이다.

더욱이 국민 다수라고 하는 무리의 실체는 목소리만 큰 극소수의 무리가 절대다수의 전체국민들을 휘두르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 전체가 국정의 모든 분야를 정확히 판별할 지적능력과 덕성을 갖추지 않고서는 잘못된 결정을 하는 쪽으로 전체가 휩쓸려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그래서 밀은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속성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정치체제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 전문분야를 대표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가장 최고는 아니지만) 그나마 최선의 정치체제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직접민주주의의 폐해는 도편추방제로 훌륭한 위인들을 공동체에서 다 내쫓아내는 식으로 망해버린 고대 그리스 아테네를 통해서 증명되었다고 보고, 더구나 직접 민주주의라고 불리우던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모든 인민을 다 포함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 시기는 매우 짧았다. https://shadowj.org/reflections/belief-honor-death-socrates/)

정치체제의 최고는 물론 직접민주주의이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으로 국민들을 개고생시키는 시스템이므로 정치체제의 최선은 대의 민주주의로 이루어낼 수 밖에 없는것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국민들로 하여금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잠재력을 높여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은 각계의 전문가들이 되고, 전문성이 뛰어난 자들이 그 분야의 대표가 되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대의기구 내 토론기능과 담화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밀은 경제적 능력을 스스로 갖추지 못해 자신의 생존을 남의 도움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말 것을 주장하는데, 이것 때문에 밀의 사상이 차별적인 엘리트주의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밀이 소신껏 밝힌 내용에서는 자기 인생도 스스로의 힘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의 인생을 어떻게 판단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아마도 밀은 자신이 삶의 과정속에서 지성의 힘이 자신의 능력과 공익을 위하는 덕성을 길러주었음을 스스로 확인하였기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발적 힘을 키울 것을 독려하기 위하여 저러한 강성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밀은 덧붙여 그 어떤 누구도 자기 자신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어떤 무엇에도 의지하려는 바가 없을 때 비로소 사회의 모든 악에 용감하게 대항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자발적이지 못하고 남의 힘에만 의존하려는 사람은 세상의 악에 굴복되어버릴 뿐 결코 그것을 이겨낼 수 없다고 보았다.

누구든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스스로 지킬 힘이 있고, 또 향상시키려 노력해야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는다.

밀의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발언은 무능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힘을 갖추어 사회의 악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위한 힘이 되어줄 지성과 덕성의 힘을 갖출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밀이 주창한 대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가 아닌 “숙련 민주주의"임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잘난 사람들만 정치에 참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 열심히 갈고닦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 소신 있는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런 숙련 민주주의를 구축시킬 수 있어야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 다수로 위장된 사악한 일부의 이기성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 지성과 덕성을 갖춘 전문가들이 될 수 있어야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이 자신의 지지세력을 갖추지 않더라도 단지 이익만을 좇는 다수의 이기심에 대항하여 소신있게 의견을 펼쳐서 그들과 맞먹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밀은 민주주의란 소수의 의견이 보장되었을 때에만 잘 이루어지는 제도이기 때문에 다수가 장악한 대중민주주의는 필시 독재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루소의 직접민주주의는 다수의 일반의지를 절대적인 것으로 강제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떤 일방의 이기적인 집단이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 다수를 속여서 장악해버리고 그 다수의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해버리게 된다면 그와 생각이 다른 국민들은 소외되고 억압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떤 공동체든지 다툼을 벌이는 경쟁세력이 존재했을 때 장기간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교황 대 왕권의 대립, 왕권 대 봉건귀족의 대립, 봉건귀족과 부르주아의 대립, 왕과 인민의 대립, 전통개혁가와 종교개혁가의 대립 등 이러한 경쟁관계와 갈등이 첨예했을 때 문명과 지성이 발전되었다.

이처럼 대의기구에도 ‘대립기능’이 없으면 정부는 그 즉시 퇴보와 부패를 벗어날 길이 없다.

어떤 체제이든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존재가 있어서 경쟁세력을 제압하고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되면 그 나라에 발전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래서 루소의 일반의지로 대중을 장악하여 이루어지는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스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루소의 사상이 적용된 프랑스 혁명 이후 자코뱅 정부의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로 그것이 증명되었다고 본다.

오늘날은 정치가나 권력자에 대한 압제로부터의 보호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중들이 지배적인 여론이나 지배적인 감정의 전제(공감의 강요)에 대해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배적인 여론이나 지배적인 대중 감정에 맞지 않는 여러 가지 개성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그런 개성 자체가 아예 형성되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들을 평등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틀에 억지로 끼어 맞추려는 사회적 분위기 자체에 대해서도 민중은 보호되어야 한다.

“이거 나만 불편해?“라는 다수여론의 감정의 주입으로부터
“응 너네만 불편해” 라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 감정의 다양성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소신발언을 쉽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피터지게 토론하고 싸우는 과정을 사회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숙련 민주주의를 향한 진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지적 탁월성을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소수파)이 자신의 탁월한 지성과 능력에 힘입어 그의 인격의 무게와 논리의 힘에 의해 다수라는 수적열세를 상쇄하고도 남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만이 민주주의 체제가 진정 평등하고 공평하며 “모든 사람에 의한 모든 사람의 정부"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같은 민주주의라야 현재 널리 퍼져있는 가짜 민주주의의 폐해를 극복해낼 수 있다.

소신있게 당당하게 살고 싶으면 그만큼 실력을 출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주류로 살아도 내 자유를 온전히 지켜내며 일당백의 실력을 갖추려는 노력들이 지금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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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양적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불가능하다. 질적 공리주의가 그것을 이룰수 있다 -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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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양적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 총량을 기준으로 개인 희생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으며, 밀의 질적 공리주의는 인간의 개성·덕성·지성 기반 행복을 인정함으로써 개인 자유와 사회 전체 행복을 동시에 보존하는 철학적 기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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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단순히 쾌락의 수치를 합산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다운 고귀함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품격 있는 만족이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소수를 도구로 삼는 사회는 결국 인류의 존엄을 파괴하며, 이는 가장 큰 불행(해악)을 낳는다. 깨어있는 지성인 한 사람의 질 높은 고뇌가 눈앞의 쾌락에 눈먼 다수의 선택보다 인류의 진보에 더 큰 효용을 주는 법이다."

—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18세기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이 중시되어가면서 근대적 의미의 민주화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 미국의 독립혁명(1776년), 프랑스 혁명(1789년)을 낳았다.

근대적 의미의 민주화가 무엇보다 중시했던 점은 과연 어떻게 해야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결합시킬 것이며, 경제번영과 사회질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였다.

결국 사회의 평등을 고려하면서 개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할 방안을 강구하려 하였고 그에 대응하여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인간이란 언제나 자신의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제러미 벤담이 발전시켰고 그와 가까운 제임스 밀이 공리주의 경제학자였으니 그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은 어릴적부터 공리주의 사상가들의 가르침속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그러나 존 스튜어트 밀이 성장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지성능력이 생겨났을 무렵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하여 한계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의 사상적 대부라 할 수 있는 벤담의 사상이 옳지 않은 것임을 깨닫고 나아갈 방향을 잃고 한동안 방황하게 된다.

밀이 생각하기에 벤담의 공리주의는 ‘양적 공리주의’로서 인간의 행복과 쾌락을 한단위로만 계산할 뿐 어느 누구도 한 단위 이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정량적으로 단일화시켜 개개인이 개성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달라질 수 있는 쾌락의 상대성과 다양성 측면을 무시하는 한계가 있었다.

밀은 많은 고민 끝에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의 다양성과 특수성은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데 결론을 내렸고, 결국 자신의 사상적 스승인 벤담이 말하는 공리주의로는 인간의 행복을 가늠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밀은 자신의 저서 『공리주의』에서 “쾌락의 측정이 반드시 양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비판한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는 사회적 행복의 총량을 높일수만 있다면 소수의 쾌락은 무시될 수 있게 되고, 그렇다면 사회전체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은 당연한 것이라는 사고관을 가지게 된다.

또한 벤담의 공리주의는 과정이야 어떠하든 결론만 좋으면 상관없다는 주의라서 사회의 행복을 위한다면 그 과정과 수단이 악해도 다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 되어서

벤담의 공리주의로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기꺼이 희생되어야 한다거나 해악을 끼치는 국민들을 집단학살해도 된다는 전체주의 독재이론(히틀러 나치즘, 스탈린 공산주의, 모택동 사회주의)이 타당한 것이 되어버린다.

히틀러도 독일을 위해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고, 스탈린과 모택동도 자신들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수천만 인민들의 죽음은 대의를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인민들의 희생을 당연시하였다.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개인의 희생을 도덕적으로 정당화시켜버리기 때문에 전체주의 독재사상으로 이어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그러한 해악을 낳을 것이라고 진작 직감하여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양적 공리주의를 한계를 지적하고 그 해악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 “질적 공리주의"이다.

질적 공리주의는 인간의 쾌락과 행복은 개개인마다 다 달라질 수 있으며, 각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쾌락의 행태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똑같이 한단위로 정량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또한 밀의 질적 공리주의는 인간의 자기개발적 상승욕구를 존중하는 것으로서 보다 더 지적이고 덕스러움을 추구하려는 장기적이고 정신적인 쾌락이 한낱 일시적으로 끝나버리는 육체적 쾌락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이 짐승이 아닌 한 도덕적이고 바람직한 삶을 각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를 배제하고서는 사회적 행복의 효용을 따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밀은 인간이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또한 권력을 얻고 난 뒤에 하는 행동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그가 아무리 사회 전체를 위하는 입장인 듯 보여도 실상은 그저 일부 집단의 이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밀의 관점으로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의 인민 대학살을 통한 혁명 완수의 권력추구 행태를 보자면, 말로는 인민의 해방이라고 표현하지만 이것은 그저 지극히 이기적 집단의 이기주의의 극대화일 뿐이고, 사회 전체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와 질적 쾌락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인간의 욕구는 다양하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인간이 바른 지성과 덕성을 갖추어 역지사지 심성을 기르고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을 헤아릴 수 있어야 갈등과 충돌이 많은 세상에서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로운 가치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바르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인간의 쾌락과 행복은 상대적이라서 누군가는 값싼 육욕을 추구하는 쾌락이 지적이고 도덕적인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밀은 그런식으로 자기만의 쾌락에만 빠져 보다 상위의 지적 도덕적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 못한다면 인간은 역지사지가 안되어 오직 자기 이익과 쾌락만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끼쳐도 된다는 관념이 자리잡게 되기 때문에 결국 사회적 전체 행복의 총량은 감소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결국 밀의 질적 공리주의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바른 생각을 갖춘 지성인 한 사람의 가치판단이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다수의 가치판단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어 다수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 함부로 대하려는 행태를 견제할 수 있는 사상의 근원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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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교육제도를 예측가능하게 안정화시켜야 평등한 교육과 독립적 인재양성 기반이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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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교육제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은 획일적 결과 평등이 아니라 각 개인이 능력과 성향에 맞게 자율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보장하는 기회평등의 조건이며, 정책 불안정성은 심리적 의존성과 교육격차를 확대하여 독립적 인재 형성을 저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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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부터 90세까지 누구나 빤히 알수 있는 예측가능 교육제도가 누구나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자율적인 자기개발도 할수 있게 한다"

— 예측가능한 정책이 국민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한다


마시멜로 효과와 존 보울비의 애착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상대에게 불확실하게 비일관적으로 행동할수록 상대는 심리적으로 점점 불안해져서 장기적 관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주관이 사라져 근시안적이고 반응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마시멜로 효과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https://shadowj.org/human-behavior/marshmallow-trust-habit/-)

이것을 빗대어 보면 현재의 한국의 교육제도나 입시제도는 아이들을 안정형 인간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된 8차 교육과정으로 그 이후의 교육정책은 정해진바 없이 수시개정을 통해 조금씩 수시로 바꾸기로 했다는데, 이것은 겉으로 보면 각 학년별 특수성을 존중해 주는 듯 보이지만 그 효과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만 가중시켰다.

양육자는 수시로 바뀌는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 신경 쓰느라 각자의 생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학생들은 그러한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입시에만 매몰되게 만들어 각자 자발적인 자기개발을 어렵게 만들고 독립적이고 개성있는 인재가 되지 못하게 된다.

교육과정이 10년마다 바뀌는 것도 그 과도기에 끼어있는 학생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는데 이것을 수시로 계속 바꾸는 식으로 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니 솔직히 우려된다.

그동안 심리학이나 자유에 관한 철학책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자율적이고 개성있는 주관 뚜렷한 독립적인 인재를 양성시키려면 국가 제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바탕이 되어야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배울수 있었다.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는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초등학생이 양육자의 보살핌이 없더라도 자신의 대학입학과정까지의 전교육과정을 스스로 파악 가능하고 충분히 예측 가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단순화시켜 지속성있게 안정화 시켜야 한다고 본다.

육아를 해보지 않는 사람도 90세 어르신도 어린아이들도 국민 그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 대해 다들 당연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내면 맞벌이로 고생하여 교육제도에 전혀 신경을 못쓰는 부모도 아이들을 쉽게 교육할 수 있을 거 아닌가?

맞벌이로 바쁜 부모, 한부모 가정, 부모가 없어 조부모가 양육하는 아이, 지적능력이 낮은 장애인 부모를 둔 아이 등 이 모든 아이들이 가정환경이 좋고 자녀양육에 집중하는 부모님을 가진 아이들과 동일하게 교육정보를 얻을 방법은 교육제도를 예측가능하게 만들어 그것을 꾸준히 안정되게 지속시켜주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교육정책이나 입시제도가 매번 바뀌면서 복잡하면 부모중에 한명은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자녀양육에 매달려야 하고, 그런 어려운 제도를 깔끔히 분석해주고 관리해 줄 사교육이 절실히 필요해지며, 그로인해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면서 어려운 가정환경의 양육자와 아이들을 더욱 소외시키게 된다.

가정의 보살핌이 부족하면 학교 선생님들을 통해서라도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어야하는데 학교 선생님은 행정업무나 평가 등이 과중되어 소외된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도록 공교육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생존하는 것 자체로도 힘든데 교육과정이 매해 바뀌고 워낙 복잡산만하니 정신까지 탈탈털려 피로하게 만들고, 학교 선생님들은 행정이나 평가 등에 정신을 소모시키게 만들어 어린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소외된 인간으로 자라나게 만든다.

이기적인 권력자들에게만 유리한 소외된 인간의 위험성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경고한 바 있다.(국민은 어떤 과정으로 전체주의 도구로 전락되는가 https://shadowj.org/power-system/2022-archive-totalitarian-mass-control/)

교육제도가 무슨 예측불가능한 일기예보 보듯이 수시로 전전긍긍하면서 교육부의 신호에만 반응하게 만드는 파블로프의 개 조련하는것도 아니고, 그렇게 부모와 아이들을 불안정형으로 전락시키니 아이의 자율성과 독립심이 어떻게 커질 것이며, 입시 공부 외의 자기만의 자기개발에 힘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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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Archive] 마시멜로 효과,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지능과 상관없다(feat.육아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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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Insight: 장기 인내력과 자제력은 지능이 아니라 신뢰 경험과 반복된 자기약속 이행을 통해 형성되며, 습관과 자기신뢰 축적이 인간 행동 지속성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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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효과. 지능의 차원이 아니라 욕구조절능력에 달린것"

— 내 자신에 대한 신뢰감 얼마나 채워나가고 있는가


마시멜로 실험의 결과는 자제력과 지능이 인과관계가 있으며, 성공하는 인간은 선천적 혹은 어린나이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속연구에 따르면 마시멜로 효과는 지능이나 자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실험자의 신뢰도’와 더 높은 상관관계가 있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 의심될만하다면 자제력과 지능이 높아도 마시멜로를 즉시 먹어치웠다고 한다.

가정환경이 어려워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매번 어기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지금 참고 인내하면 훗날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지금 참고 인내해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경험만 해왔기 때문이다.

(※가정환경이 어렵다는 것은 경제적 빈곤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풍족해도 부모가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환경일때도 가정환경이 어려운것으로 봐야한다고 본다.)

또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굳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아동은 자제력이나 지능과 관계없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았다.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기꺼이 미룬다는 마시멜로 효과는 지능이나 자제력과 상관없이 “신뢰도"나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정의를 바꾸어 정리할 수 있겠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 공부하는 수험생들이나 자기개발을 하는 취준생 중에서 누구는 성실하게 꾸준하게 해나가는데 누구는 의욕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포기하게 되는 차이는 바로 이 마시멜로 효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능이나 자제력과는 상관이 없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큰가에 좌우되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뎌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기준에서 뭔가를 참아냈는데도 이룬 것이 없을 때 그렇게 된다.

내가 현재를 참아냈을 때 무언가를 성취해낸 경험이 있어야 장기적으로 인내를 해야 하는 수험공부나 취업준비 자기개발 등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건 도대체가 어느 정도 인내해야 그것을 이룰지, 내가 얼마만큼 성실해야 그것을 이룰지 자기 자신에 대한 경험 정보가 없다 보니 내 기준이 아닌 남 기준으로 자신의 공부량을 판단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게 비교 과정에서 오는 나에 대한 실망감까지 더해져서 의욕은 점점 잃어가게만 된다.

아무런 성취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노력하고 인내해야 결과를 얻을지 감이 안잡히는 사람들은 “루틴을 오랫동안 쭉 이어나가기"를 통해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한 루틴으로 자존감이 살아났을 때 자기가 목표로 하는 것을 주관을 가지고 내 식대로 꾸려나갈 수 있게 된다.

각자가 어느 정도 수준의 루틴을 만들어낼지는 각자의 자기신뢰도에 따른 것이고, 단 한 번도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본 적이 없어서 매번 실망이다 싶은 사람은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루틴을 만들어 나가야 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각 잡고 깔끔하게 개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5분간 스트레칭하기, 하루 5분간 제자리 뛰기 하기, 잠자기 전에는 심호흡 30번 꼭 하고 자기 등등등

이렇게 아주 쉬운 것들을 3일간, 일주일간, 보름간, 한달간, 두달간, 100일간 이어나가면서 하루도 빼지 않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자기신뢰감이 커져가면서 더 큰 목표도 거뜬히 꾸준히 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종이한장 드는 수준으로 아주 쉬운 것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루도 빼지 않고 밥 먹듯이 무의식적으로 오랜기간 이어나갈 수 있는 정신의 힘을 유지시키는 습관을 들이는것이 핵심이다.

(참고)

유아를 키우는 부모님의 경우에는 아이의 칭얼거림이 귀찮아서 “그래그래 해줄게 해줄게~ 나중에 사줄게~“이런 말을 생각 없이 했다가 아이와의 약속을 안지키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는데, 육아과정에서 아이와 소통할때 귀찮거나 난감해서 그냥 가볍게 해버렸던 거짓말(?)이 그 아이가 자라나면서 인내심과 자제력이 없는 자기신뢰감이 낮은 아이로 만들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게 마시멜로 후속실험의 교훈이고, 존 보울비의 애착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된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도 『행복의 정복』에서 아이와 소통에서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이 그 아이의 바른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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